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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in&Out 레저] 오름에 오르니 가을이 내려오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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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란 한라산 산록과 중산간지대에 집중 분포되어 있는 자그마한 산들을 일컫는 말. 지질학 용어로는 기생(寄生) 화산이다. 용암의 분출로 한라산이 생겼듯 오름도 한결같이 화산 활동의 결과로 생긴 것들이다. 그래서 오름 정상에는 굼부리로 불리는 분화구가 있다. 제주도에는 오름이 모두 368개다. 전 세계에서 단위 지역에 오름이 이렇게 많이 밀집해 있는 곳은 제주도 말고는 없다. 그러니 제주도에서 오름은 삶과 역사의 현장이며, 설화나 문학 등 제주 예술의 탯줄이다.

제주에 가 본 사람치고 오름을 밟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게다. 제주도 내에서 '○○봉' '△△산'으로 불리는 것들이 죄다 오름이다. 하지만 관광지로 개발된 이들 '봉'과 '산'에서는 오름의 참맛을 맛볼 수 없다.

제주도 내 오름에 해박한 제주도 사람 김정조(46)씨에게 오름 한곳을 소개해 달라 했다. 그는 제주도 내 오름동호회 중 하나로 가족 단위 오름 트레킹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한라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baeklokdam) 회원이다. 매주 제주MBC 방송에 출연해 제주도민에게 오름을 소개하는 오름 매니어다.

그가 소개한 곳은 북제주군 애월읍의 '노꼬메'라는 오름이었다. 제주 관광지도에는 '큰오름'이라고 표시돼 있다. 해발 833m이며 비고는 234m다. 비고란 산의 경사가 시작되는 최저점에서 최고점까지의 높이다. 그러니 산기슭에서 수직 높이로 234m를 올라가면 노꼬메 정상에 오르는 게다. 제주 오름 열 중 여덟은 비고가 100m 이하라 하니 노꼬메는 오름 중에서 큰 편이요, 높은 축에 속한다. 큰오름이니 노꼬메니 하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알겠다.

서부관광도로(95번 국도)에서 제1한라관광도로(1117번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어리목 방향으로 정확히 2.2㎞를 달리면 길 오른편에 펼쳐지는 '소길공동목장'이 있다. 목장 입구의 갓길에 차를 세우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1.5㎞ 걸어 들어간다.

포장도로에서 벌써 노꼬메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노꼬메는 말굽형 굼부리를 가지고 있다. 제주지질연구소 강순석 소장에 따르면 말굽형 굼부리란 화산 활동 당시 용암이 공중으로 분출되다가 바람이나 지형 등 때문에 화구(火口)의 한쪽 면이 허물어진 것. 굼부리의 허물어진 부분, 그러니까 트여 있는 경사면이 목장 내 도로 쪽을 향하고 있다.

목장을 지나 경사가 시작되는 지점. 오름에 오르는 길은 사람 한 사람이 겨우 지날 만한 오솔길. 길 옆으로 곰솔이며, 삼나무 등이 우거져 있고, 덩굴이 그 나무들의 줄기를 덮고 있다. 이어 사방으로 조릿대가 가득 덮은 비탈길. 우습게 봤는데 제법 등줄기에 땀이 흐르게 하는 난코스도 가끔 만난다. 포장도로를 벗어나 40여 분을 걸은 뒤 당도한 노꼬메 등성이. 정상에서는 제주 서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북으로 제주 시가지와 공항이, 서쪽으로는 한경면 용수리의 풍차가, 남쪽으로는 산방산이 내려다보이며 동편으로는 한라산 정상이 구름 속에 숨어 있다.

노꼬메 마루는 지금 억새 천지다. 푸른 대공 위에 불그스름한 억새꽃이 피었다. 가을이 깊어지면 대공과 꽃이 허옇게 말라갈 것이다. 한바탕 바람이 스칠 때마다 등성이의 억새가 춤을 춘다.

제주 사람들도 오름을 잘 모르던 시절, 제주도 지역 신문인 제민일보 기자로서 수많은 오름을 오르며 오름 답사기를 연재한 고(故) 김종철씨는 노꼬메에 대해 이렇게 썼다.

'숲비탈에는 비자나무도 곳곳에 자라고 있으며 무성한 조릿대는 위로 오를수록 가슴 높이까지 우거져 이를 헤엄치듯 헤쳐나가야 한다. 호젓한 숲 속에서 난데없이 짖어대는 노루소리에 놀라기도 한다. 더 이상 접근치 말고 썩 물러가라는, 침입자에 대한 경고다. 요즘은 중산간지대의 오름에서도 으레 그 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부쩍 노루가 많아졌다.'

일몰 무렵 노꼬메 등성이 여기저기서 노루 울음 소리가 들렸다. 일몰을 즈음해 오름을 내려와 목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길 옆에 있던 노루가 인기척에 놀라 수풀 속으로 달음질쳤고, 그때 수풀 속의 반딧불이 몇 마리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제주> 글.사진=성시윤 기자

*** 여행정보

오름은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오름 동호회 홈페이지를 꼼꼼히 보고 길을 파악해 놓고 올라가야 한다.

제주 흑돼지를 맛보고 편히 묵을 수 있는 펜션 두 곳을 소개한다. 우선 남원읍 신영영화박물관 인근의 '바다로 향한 문'(064-764-9055.marinajeju.com). 흑돼지 5000마리를 키우며 서울 현대백화점 등에 고기를 납품하는 오영익씨 내외가 운영하는 곳. 돼지 바비큐 식당을 펜션 내에 운영하고 있다. 1인분에 1만5000원. 숙박료는 요일에 따라 10만~13만원. 또 한 곳은 중문관광단지에서 4㎞ 거리의 '재즈 마을'(064-738-9300.www.jazzvillage.co.kr). 12월 말까지 펜션 내 바비큐장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 가족여행자를 대상으로,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바비큐 파티를 연다. 바비큐와 포도주를 무료 제공한다. 숙박료는 10만~15만원.

가이드와 함께 오름을 트레킹하는 여행 상품도 최근 나왔다. 항공, 펜션 2박, 오름 트레킹을 포함해 요일에 따라 22만6000원~28만7000원. 이 상품은 11월 말까지 판매한다. 문의 대장정여행사(djj.co.kr) 064-711-8277.

참고로 제주공항 내 내국인 면세점을 이용하려면 주말에는 비행기 이륙 한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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