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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살 길은 공영성 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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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런 것이 공영방송의 생리인데, 대한민국 기간 공영방송 KBS는 지난해 638억원의 적자를 내고, 최근 나름대로 '경영혁신추진안'을 내놓았지만, 내부에서조차 미흡하다는 평가 속에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내부 구조 개편도 해보고, 수신료도 인상하려고 하지만, KBS 내부는 물론 여론의 눈총도 따가워 모두 신통치 않아 보인다. 적자 만회의 해법을 잘못 짚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비상업적 동기 부여로 공영방송은 그만큼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공익적 프로그램을 편성할 사회적 책임이 부과된다. 또한 공영방송은 고품질을 유지하면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다른 상업 방송사들을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를 받는다. 공영방송은 뉴스에서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프로그램 편성에서도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도록 기대된다. 공영방송은 교육을 선도하며, 모든 취향과 문화를 충족시키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한다. 이렇듯 영국 문화부 장관이었던 테사 조웰이 BBC에 대해 기대하며 언급한 것처럼 프로그램의 공영성 회복이 적자 만회의 지름길이라는 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미국의 공영방송 PBS가 1980년대 초 극심한 경영 위기 상황을 바로 프로그램의 공영성 강화와 다양성 확대로 돌파한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PBS는 한때 축소지향적 공영론에 함몰되어 대중성을 등한시한 채 문화 및 과학 프로그램 중심의 편성에 주력해 왔다. 그러다 보니 소수의 욕구만을 충족시키는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시청률은 형편없이 낮은 결과를 초래했다. 타개책으로 지역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어린이 프로그램의 확충으로 프로그램의 다양성 추구를 통해 시청자 다원화를 지향한 전략을 세워 성공을 거두었다. 너무 공영적이어서 문제가 된 미국의 PBS와 달리 우리 공영방송은 한쪽으로는 상업성이 극대화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성이 노골화되는 채널 특성화를 보여 문제가 되는 듯하다.

우리 공영방송 프로그램의 현주소는 어떤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청계천 복원 행사는 어떤 의도에서인지 어느 방송사 하나 생중계하지 않았고, 사회적 쟁점에 대해서는 기계적 형평성을 강요 말라며, 정치를 하는 공영방송인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오락 프로그램의 편성이 과다한 가운데, 선정성과 가학성은 날로 심각해져 방송 출연진이 다치고, 동물에 물리고, 심지어 죽음으로까지 몰고가는 형국이다. 시청자 복지에 대한 불감증이 만연해 출연진이 알몸을 노출하기도 하고, 심지어 최근 수많은 시청자의 큰 희생을 초래하기도 했다.

정연주 KBS 사장은 2003년 취임시 "시청률은 떨어져도 공영성을 강화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라고 천명한 바 있다. KBS가 공식적으로 내걸고 있는 슬로건은 '건전한 가정 문화 채널'이다. 상업방송의 선정성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정신적 그린벨트를 표방하는 오락 프로그램을 추구하고 있다.

이렇게 진작에 인식하고 있듯, 오락은 오락대로 보도교양은 보도교양대로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방송 공영성의 회복과 강화가 치열해지는 경쟁적 방송 환경 속에서 공영방송이 보존, 발전할 수 있는 첩경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새겨보길 새삼 기대해 본다.

박천일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