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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 은퇴자산 9년도 못 버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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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그동안 재테크는 말 그대로 돈을 모으는 기술이었다. 금리가 높았기 때문에 목돈을 굴릴수록 유리했다. 부동산 불패 신화도 통했다. 그러나 반퇴 시대엔 더 이상 이런 공식이 작동하지 않는다. 본지가 15일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에 따르면 재산을 은행예금과 부동산만으로 굴려선 30년 반퇴 시대를 건널 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평균적인 50대 한국인 김한국(55·가상 인물)씨 사례를 보자. 재산(총재산-부채)은 ‘삼성생명 은퇴백서’ 설문조사 결과에서 도출된 50대 평균 순자산(4억5077만원)을 감안해 5억원으로 가정한다. 하지만 이 돈을 모두 노후설계에 쓸 순 없다. ▶통계청이 조사한 50대 평균 자녀 교육비 5년치(2500여만원)와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한 아들·딸 2인의 평균 결혼비용 2억5000여만원을 빼니 2억2500만원이 남았다. 삼성생명 설문조사에 따르면 퇴직자 월평균 생활비는 238만원이었다. 은행 예금금리는 지난해 11월 평균치인 연 2.1%,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1.3%를 적용했다. 이를 토대로 추산해보니 김씨는 부동산까지 모두 노후자금으로 투입한다고 해도 9년 뒤면 빈털터리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비 등 예상치 못한 지출은 감안하지 않은 결과다. 물론 62세가 되는 7년 뒤부터는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현 상태로는 30년을 버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5억원 대신 50대 평균 순자산 4억5077만원을 적용하면 반퇴 자산은 1억7500만원으로 줄어 생활비 고갈 시점도 ‘7년 뒤’로 더 앞당겨진다. 김씨가 교육비나 결혼자금을 한 푼도 안 쓴다고 해도 은행예금에만 넣어두면 16년밖에 못 버틴다. 부동산을 팔거나 주택연금의 담보로 넣지 않는다면 생활비 소진 시점은 훨씬 빨리 온다. 김진영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장은 “지금까지는 부모가 살던 집 한 채는 유산으로 여겨 정리하지 않았지만 이젠 유산이 아니라 노후설계에 투입할 가용자원으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테크 공식이 바뀐 만큼 은행 예·적금과 부동산에 대한 집착도 버려야 하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부동산 역모기지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다. 이를 바꾸지 않고선 반퇴 시대 노후설계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위험 부담을 안고 투자에 나서는 것도 불가피해졌다. 시뮬레이션 결과 4억5077만원으로 30년을 쪼개 쓰자면 최소한 수익률이 연 6.6%는 돼야 한다. 은행 예·적금으론 불가능해 중위험·중수익 투자상품이나 해외 투자로 눈을 돌려야 한다. 긴 기간 동안 돈을 분산시켜 수입이 끊기지 않게 관리하는 기술도 중요해졌다. 매달 일정액의 생활비가 꾸준히 월급처럼 손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돈의 흐름’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 센터장은 “상당수의 50대가 옛 방식의 재테크를 고집하는데 이러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며 “‘세상이 달라졌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자세를 갖지 않으면 30년 반퇴 시대를 넘기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김동호·김기찬 선임기자
박진석·박현영·염지현·최현주·박유미·김은정 기자 hope.bant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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