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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렵성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설악산 반달곰이 구조활동의 보람도 없이 죽어간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V자모양의 흰털이 가슴에 새겨진 이 반달곰은 10여일 전에 몇발의 총탄을 맞아 산중을 헤매다가 숨진 것으로 부검결과 밝혀졌다.
반달곰은 한반도를 비롯해서 만주·일본 등지에만 사는 희귀종으로 6·25 당시만 해도 수천마리는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지금은 전국적으로 50여마리쯤 심산유곡에 살고 있을 것으로 짐작될 뿐 좀처럼 보기 힘든 짐승이다.
정부가 작년 11월 반달곰을 천연기념물 3백29호로 지정하고 설악산을 보호구역으로 정한 것은 감종위기에 있는 이 희귀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흔히 희귀동식물의 보고로 불리는 설악산은, 따라서 밀엽꾼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기도하다.
극약을 놓아 노루나 말똥가리·꿩 등을 마구 작아들이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덫이나 총 심지어 사제폭탄까지 만들어 반달곰과 감은 희귀동물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총탄을 맞은 반달곰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을 뿐이지 부르는게 값이라는 웅담을 노려 반달곰을 잡았다는 얘기는 그곳 주민들에게는 비밀도 아니다.
밀렵꾼들은 등산객이 많은 주말을 피해 짐승이 잘다니는 계곡에 매복했다가 닥치는 대로 총질을 해서 총성이 마을에까지 들리는 일이 자주 있다는 것이다.
야생동물가운데는 주민들에게 해를 주는 일이 더러 있다. 가령 금렵기간 중에 번식한 멧돼지들이 민가에 들어오거나 다 지어놓은 농사를 망치는 일이 그것이다. 일정기간 사냥을 허용하는 것은 이런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천연기념물」반달곰의 죽음이 특히 충격적인 것은 사건은 바로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에서 그것도 「금렵기간」 중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수난의 대상은 동물뿐이 아니라, 희귀식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흔히 알피니스트의 심벌로 불리는 「에델바이스」만 해도 마구 캐어가 지금은 인적이 닿는 곳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우리 나라에 희귀동식물이 남아날수가 없다.
자연이 자연 그대로 보존된다는 것은 나무가 있어야할 곳에 나무가 있고, 바위가 있을 곳에 바위가 있으며, 그 사이에서 들짐승·날짐승들이 마음놓고 노니는 것을 뜻한다.
마구잡이 남획으로 생태계가 파괴되는 이상 자연이 자연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함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사건의 원인을 따져보면 방지대책은 간단히 나온다. 바로 효과적인 단속을 펴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한마리 반달곰의 죽음은 대수로운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 일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우리의 자연환경을 깡그리 황폐화할 가능성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당장 할 일은 철저한 수사로 범인을 색출,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일이다. 총질을 한 날짜가 오래되고 총알이 몸에 박여있지 않아 수사가 쉽지는 않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총기소지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우리의 실정에 비추어 당국의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범인을 찾아낼 능력은 없지 않다고 본다.
비록 범인은 잡지 못해도 끈질긴 수사를 편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행위의 사회적 위해를 일깨워주는 계기는 되리라고 믿는다.
이와 함께 밀렵꾼들이 잡은 짐승의 판매루트를 정확히 알아두는 일도 필요할 것 같다. 밀렵이 성행하는 것은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장물의 판매를 파악하듯 밀렵한 들짐승의 판매루트를 수사당국이 파악하고 있으면 불법사냥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자연보호란 산에 있는 쓰레기나 줍는 일이 아니다. 구호만 외치는 자연보호가 아니라 참다운 자연브호가 되도록 생태계의 조사연구와 함께 감시단속체제를 더욱 강화하도록 이 기회에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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