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교수 역사 가정법 논리적 타당성 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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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4일 서울 경찰청 옥인동 보안분실로 출두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한 체제와 관련한 튀는 주장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강정구 교수의 역사 해석에 대해 학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학자들이 주로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강 교수가 자신의 연구방법론이라고 밝힌 이른바 '역사추상형 비교방법론'의 학문적 타당성 여부다. 역사에 가정(假定)을 세워 실제 역사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논리 전개 과정 곳곳에 허점이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지난달 30일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1946년 당시 조선사람 77%가 사회.공산주의를 원했다면 그 체제를 택하는 것이 당연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저서 '분단과 전쟁의 한국현대사'(1996)에서 "미 점령군이 없었다면 남한에서도 북한처럼 혁명적 농지개혁에 성공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7월 한 인터넷 매체의 기고문에서는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6.25는 한 달 만에 끝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핵심적인 주장들이 모두 "…했다면, …했다"라는 형식으로 역사에 대한 가정을 하고 그런 가정에 따른 결론을 제시하는 형식인 것이다. 그는 이 같은 논리 전개 방식으로 "공산주의 체제를 택했어야 했다"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것처럼 들리는 말을 하면서도 "전제 조건에 따른 역사적 해석일 뿐이지 특정 체제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일영(정치학) 성균관대 교수는 "강 교수식의 가정법은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반박이 가능하다"며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6.25가 한 달여에 끝났을 것이라는 주장은 북한이 남침하지 않았다면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쉽게 맞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상인(사회학) 서울대 교수는 "가정을 통한 반(反)사실적 추론법은 사회과학연구에 유용하나 강 교수의 주장은 논리적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강 교수는 북한이 남한과 달리 '순수해방공간'에서 혁명적 농지개혁에 성공했다고 하나 해방이 연합국에 의해 이뤄진 만큼 강 교수의 가상개념인 순수해방공간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며, 따라서 반사실적 추론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가정을 하자면 수백 가지 가정을 할 수 있는데 당시의 구체적 상황에 대한 면밀한 검증 없이 연구자의 입장에서 유리한 사례만 끌어쓰는 점이 문제"(김영호 성신여대 정치학과 교수)라는 지적도 나왔다.

강 교수는 최근 발표한 글에서 "역사의 가정은 친일 및 과거청산이 전혀 이뤄지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경우 훌륭한 혜안과 길잡이가 된다"고 주장했다.

박성우.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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