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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인력시장」도 고학력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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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력을 파는 젊은이들이 거리에 넘실거린다. 서울북창동과 남대문로, 종로3가, 단성사주변의 「조리사의 거리」를 비롯, 평화시장 「재단사의 거리」, 낙원동 「악사시장」 등 수십·수백명의 젊은이들은 매일 인력을 구하는 고용주가 나타나는 시간엔 밀물처럼 몰려들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종전에 비해 아르바이트거리를 구하는 대학생이나 고교졸업이상의 고학력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 요즘 나타난 새로운 현상.
국민학교정도만 졸업하고 일터에서 잔뼈가 굵은 막일꾼이나 범법자들이 모이던 종전의 양상과는 다소 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조리사거리>
9일 상오 7시30분 서울남대문로 남대문극장앞. 1백여명의 조리사들이 길을 메우고 서성거린다.
길건너편 북창동에도 같은 숫자의 젊은이들이 몰려서있다.
이들은 상오 6시쯤부터 이곳에 나와 10시30분까지 고용주나 중간브로커들과 「인력」흥정을 끝내고 각자 목적지로 떠난다.
모인 사람의 90%는 20대의 젊은 중국음식점 조리사(주방장)나 속칭 「라면」(국수빼는 사람), 홀에서 음식을 나르거나 배달하는 보이출신.
고용주인 음식점주인들은 주로 다방에 앉아있고 취업을 알선하는 중간브로커들이 취업을 주선해주고 고용주로부터 5천∼2만원씩의 커미션을 받는다.
이들 젊은이들의 80∼90%는 매일 이곳에 나와 일자리를 찾으면 고용업소에서 하루일만 해주고 일당을 받는 일을 되풀이하는 「노동시장의 철새들」.
일당은 조리사급이 9천∼1만2천원, 국수빼는 사람은 7천∼8천원, 배달을 담당하는 보이는 대개 월급제(12만원내외)로 고용된다.
종전에는 국민학교졸업정도의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였으나 최근 l∼2년사이엔 방학중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들도 제법 눈에 띄고 고졸이상의 학력소지자는 전체의 15∼20%를 차지한다.
주방경력 12년의 남광희씨(28·서울신당동)는 『지난 겨울방학에도 이곳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대학생을 몇명 보았다』며 『점차 직업에 귀천이 없어져가는 풍조로 인력시장의 수준향상을 엿볼수 있다』고 했다.
조리사로 베테랑급인 남씨는 지난해 봄까지 남대문로의 D음식점에서 월급제(20만원)로 일했으나 노동시간이 하루 20시간 가까이 되는 등 너무 고되고 주방이 불결해 일당품팔이로 바꿨다고 했다. 매일 일자리를 바꿈으로써 배짱대로 오랜시간 일하지 않아도되며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것.

<재단사의 거리>
서울청계천6가 동화상가와 통일상가사이 골목의 하오 l∼2시 2백∼3백여명의 20대초반 재단사 및 봉재공들이 골목을 메운다.
『상철아 나 됐다』 『그래 몇째냐』 『열셋』
김모군(20)은 월급 13만원을 받기로하고 한 미싱가게에 일자리를 구했다고 같이온 친구에게 자랑을 했다.
한 직장에 정착하지 못하고 철새처럼 떠돌아다니는 이들이지만 화끈한 삶의 생동감이 엿보인다.
월급은 대체로 재단사가 20만∼50만원, 미싱사 13만∼25만원, 미싱보조 9만∼10만원선.
재단사의 경우 과거에 비해 고졸이상의 젊은이들이 두드러지게 많아졌고 재단에 취미가 있는 전문대생이나 대입재수생까지 눈에 띄고 있는 실정.
미용미술을 전공한다는 H전문대2년 최성호군(22)은 지난 겨울방학때부터 이곳에서 재단사 일자리를 구해 월25만원을 받고 종로5가 광장시장내 양복점에서 일을 하고있다며 아직도 실제기술은 서투르지만 학교수업이 끝나면 저녁때 일을 익히고 있다고 했다.
재단사의 경우는 일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월급도 괜찮은 편이나 미싱사나 보조자들은 나쁜 작업환경과 낮은 보수에 불만이 크다.
이때문에 대부분 한군데서 1년도 못채우고 일자리를 옮기기 일쑤. 그래서 항상 이곳 재단사의 거리가 북적댄다.
요즘 봉제품수출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면서 인력수요도 늘어 일자리를 구하기는 어렵지 않은 편이다.

<악사시장>
서울낙원동 낙원상가의 하오 4시. 장발에 울긋불긋한 옷차림, 남자도 목걸이를 한 전위적인 냄새를 풍기는 20대 「보히미언」들이 물려들기 시작한다. 하오 5시가 되면 젊은이들의 물결은 절정을 이뤄 l백∼2백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유흥업소에서 하룻밤이나 수개월 연주를 할 일자리를 구하러온 악사들이다.
대학입시에 떨어져 3수까지 하다 악사로 전환, 기타를 지고있는 성태경씨(26)는 경력4년에 레퍼터리는 l백여곡.
서울신사동의 B디스코클럽에서 3개월간 일하다 월급이 맞지 않아 새 일자리를 구하러 이곳에 왔다고 했다.
6인조 밴드의 일원인 성씨는 6명기준으로 월1백50만원(1인당25만원)을 받았으나 보수를 좀더 올려받을수 있는 일자리를 구한다고 했다.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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