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어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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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린이는 우리사회의 새싹이오, 희망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을 비롯한 소년운동가들이 1923년 일제의 식민암흑기에 신록의 5월로 어린이날을 정한 것도 이같은 앞날의 꿈과 희망을 상정하고 갈구했음이다.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티없이 맑은 마음, 고사리 같은 손들을 대할 때마다 그 순결과 무구가 가슴을 저리게 한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노래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여리지만 청아하고 힘차다. 인문의 생명력과 미래의 희망이 넘쳐흐른다.
일제의 탄압에 나라를 빼앗기고 형극 질곡의 길을 걷고 있던 선각자들은 나라의 희망을 어린이들에게 걸었고 따라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 먼저 어린이날을 제정했다. 일종의 사회운동으로 출발한 것이다. 어린이헌장을 선포한 것도 1957년으로 유럽보다 2년이나 앞섰고, 어린이날을 공휴일로 정한 나라도 우리뿐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어린이운동이 앞서 있는 셈이다.
어린이헌장 제1조는「어린이는 인간으로서 존중해야 하며 사회의 한사람으로서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고 돼 있다. 또한 국제연맹이 제정한 어린이 권리선언은「어린이는 법률 또는 다른 방법에 의해 신체·기능·도덕·정신·사회적으로 건강하고 정상적인 방법에 의해 그리고 자유와 존엄성이 있는 조건아래서 자라날 수 있도록 보호를 받아야 하며 또한 그러한 기회와 시설이 제공돼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한 입법에 있어서의 최고의 고려는 어린이 자신의 이익에다 두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우리 선각자들의 뜻이나 희망에 부응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당위성과 필요성이 왜곡되고 외면되는 현실을 개탄하는 것이 오히려 새삼스러울 정도다. 어린이들의 성장환경이 어른들의 혼탁한 세계에 오염되고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의 허영과 탐욕 때문에 순수한 의지와 소망이 무시된 어린이들은「애늙은이」가 돼 가고 있다. 어린이들의 선호와는 관계없이 강요당하는 예능특기 교육 등 이 그러한 예가 될 것이다. 부모와의 대화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따뜻한 가정의 분위기를 상실한 채 정에 굶주린 외톨박이로 문제아가 돼 가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부모들의 과보호로 의타적이고 무기력하게 자라나는 버릇없는 아이들도 많다. 즐겁게 뛰 놀수 있는 장소가 없어 좁은 길이나 위험한 한 길가 또는 불건전한 만화가게나 오락실을 배회하는 어린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한해 20만 명이 넘게 버려지는 아이들, 어른들의 불찰로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는 수많은 어린이들,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태어나지도 못한 채 사라져 가는 태아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 모든 일들이 어린이를 보호해야 할 어른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
어린이에 대한 사랑은 이성과 절도가 요구되며 어디까지나 어린이 본위여야 할 것이다. 건실하고 책임감 있는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노력이 배가되어야 할 것이다.
5일은 어린이날-. 요란한 선물이나 화려한 나들이 같은 하루에 그치는 관심으로 이날의 임무를 다했다고 홀가분해 하는 어른들은 없을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어린이들에 대한 문제들을 함께 진지하게 반성하고 노력하는 계기가 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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