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옴부즈맨 칼럼

부·젊음만 숭배하는 사회 따끔한 회초리 드는 기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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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희망'이란 단어는 내 어릴 때 먹던 달고나처럼 달큼한 맛이 돈다. 마음속에 들러붙어 떼어지지 못할 저마다의 희망.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일을 보면 암담할 때가 많다. 잠시 일본에서 1923년에 유행한 '아, 모르겠다'란 노래가 생각난다. "아! 모르겠다, 모르겠다. 이 세상은 모르겠다/먹고 사는 일도 모르겠고/한 치 앞도 캄캄하다/늘어나는 강도, 살인과 자살, 걸인, 미치광이/얼마나 더 늘어날까/놀아도 돈 붙는 사람/벌어도 벌어도 배고픈 사람/뭐가 뭔지 모르겠네…." 그때의 일본이나 현재 한국의 부조리한 현실은 비슷하지만, 암담함을 주는 사회는 모르겠단 노래가 유행했던 사회보다 심각하다. 무엇보다 융통성 없는 부동산 정책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골은 깊어져 전.월세가 올라 서민들은 암담하다.

이 와중에 언젠가 노무현 정부 후반기 소망 100자 릴레이 코너가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각 분야 젊은 전문가 위주의 인터뷰는 중앙일보의 젊은 이미지로 크게 어필되었지만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그것은 빈민층과 노년층의 의견은 싣지 않아 공평하지 않았고, 소망이란 단어의 밑바탕에 깔린 절박한 현실감이 부족하였다. 물론 기획기사마다 열정과 재치와 일시적 변화나 재미가 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소망과 제대로 된 가치관을 뿌리내리기 위해 창간 40주년 특별행사로 열린 '위.아.자 나눔장터'와 같은 사회운동이 우직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수익금으로 빈민층 아이들에게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복지와 교육 기회를 주겠다는 뜻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나눔장터가 넓게는 에너지 절약과 환경운동으로까지 확대되었으면 한다. 또한 사랑과 나눔으로서 책 읽고 좋은 시 외우기 운동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 한낱 가을날의 꿈에 불과한 걸까.

아무튼 이 시대 정신문화의 문제점을 심도 있게 짚어 보고 해결할 방법을 슬기롭게 푸는 코너가 있으면 좋겠다. 또 그 얘기야, 하며 상투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여전히 중요하다. 현 정부 들어 빈부격차만큼이나 청년과 장년층, 노년층의 경계선이 더욱 두터워진 기분이다. 나이 먹는 일을 서럽고 부끄럽게 만들고 노인들을 절망스럽게 몰아가는 문화. 역대 대통령과 지도층이 훌륭한 어른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지 못한 원인도 있다. 지혜와 경륜을 지닌 장.노년층을 짐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현실, 정말 심각하다. 한 영화에서 "너희는 안 늙을 줄 아냐"는 말이 스쳐간다. 미래의 늙은 자기 모습과 부모를 떠올리면 숙연해질 것이다.

고령화 사회로 간다는 건 늙음을 한탄하거나 경시하지 말고, 늘 새롭게 살며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회로 만들라는 얘기다. 그 이치를 잊고 젊음과 미모를 숭배하는 이 시대 문화는 많은 부작용을 부를 뿐이다. 외모 지상주의와 성공과 부의 숭배만큼이나 웰빙, 웰빙 외치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정신적 허기가 느껴지는 건 왜일까. 내면과 정신이 공허할 때 보이는 것에만 사로잡히게 되어 있다. 우리가 왜 살고 있을까? 살아가는 보람과 의미까지 뿌리째 흔들리는 사회를 위해 중앙일보가 따끔하고 따뜻한 회초리를 제대로 들 순 없을까.

신현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