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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나라살림] 중. 갈수록 부족한 세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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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나라 살림도 가정 살림과 원리는 똑같다. 한 해 돈 쓸 곳이 정해지면 이를 충당하기 위해 ▶돈을 벌어오든가(세금 수입)▶있는 재산을 팔든가(공기업 주식 매각 등 세외 수입)▶다른 곳에서 꿔 와야(국채 발행) 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세금 수입에 지출을 맞추는 균형예산이다. 세수에 구멍이 나면 이를 메우기 위한 빚을 자손에게 물려주든가(국채 발행), 정부 재산을 축내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 회복이 늦어지면서 세수 부족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내년에 정부가 처음부터 9조원의 적자 국채를 발행하기로 한 것만 봐도 세수 부족의 심각성을 가늠할 수 있다. 더욱이 정부의 내년 세수 전망은 5% 성장을 전제로 한 것이다. 경기 회복이 늦어지면 국채 발행은 더 늘 수밖에 없다.

과거 고속성장시대엔 팽창 예산을 짜도 세수가 항상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성장률이 뚝 떨어져 세금을 걷기가 갈수록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수를 늘리는 것보다는 세출을 합리적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예산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 세수 부족 일시적 현상인가=한국의 세수는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등 3대 세목에 70%를 의존하고 있다. 이 중에 한 가지라도 세수에 차질이 빚어지면 전체 나라살림이 흔들린다. 문제는 3대 세목이 모두 경기 흐름에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올해 부가세와 소득세 세수가 당초 기대와 달리 크게 줄어든 것도 소비가 기대했던 것만큼 빠르게 살아나지 않은 데다 저금리 지속으로 이자소득이 줄었기 때문이다.

세제 개편으로 인한 세수 감소분도 만만치 않다. 이는 경기와 무관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세금이다. 올 초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을 각각 2%포인트와 1%포인트씩 낮춘 게 결정적이다. 냉장고와 에어컨을 특별소비세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연간 5000억원 안팎의 세수 감소를 초래할 것으로 추산된다.

새로 생긴 세목이라고는 종합부동산세 하나뿐이다. 그러나 이는 거래세와 재산세 인하로 인한 지방 세수 감소분을 메우는 데 써야 해 중앙정부 살림에는 큰 보탬이 안 된다. 결국 경기가 빠른 속도로 살아나지 않는다면 세수 부족 사태는 상당기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 법인세율 재인상론 고개=소주세율과 도시가스(LNG) 특별소비세 인상이 무산될 처지에 놓이자 정부 일각에서 법인세율을 원위치시켜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주세율과 LNG 특소세 인상으로 세수에 8000억원 안팎의 구멍이 났으니 이를 메우자면 법인세율을 되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법인세를 깎아줬지만 세금을 낼 여력이 있는 수출 대기업만 혜택을 봤을 뿐 기업 투자는 살아나지 않았다"며 "중소기업은 어차피 이익을 못 내 세율을 올리더라도 부담이 늘지 않는 만큼 법인세율은 다시 올리는 게 경기를 위해서도 낫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인세율을 다시 올리기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여당으로선 세율을 낮춘 지 1년도 안 돼 다시 올리기가 부담스럽다. 게다가 미국.유럽 등 선진국이 앞다퉈 법인세율을 낮춰주고 있는 마당에 한국만 다시 올리는 것도 국제 흐름과 동떨어진다.

◆ 국채 발행 증가=현재로선 세수를 확 늘릴 묘안을 찾기 어렵다. 소주세율조차 못 올리는 마당에 서민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세목을 신설하거나 소득세율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부 재산을 파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미 6조3000억원어치를 팔기로 했기 때문에 더 내놓을 것도 마땅치 않다.

결국 세수 차질이 빚어질 경우 국채 발행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장에 채권 공급을 늘리면 금리가 오른다. 이는 다시 민간기업의 회사채 발행을 위축시켜 민간의 투자 회복을 지연시키고 경기 회복을 가로막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조세연구원 성명재 박사는 "국채는 한번 발행해 놓으면 이자 부담 때문에 여간해선 줄이기 어렵다"며 "국채가 민간의 채권 발행을 위축시키는 수준에 이르기 전에 정부 스스로 씀씀이를 조절해 국채 발행 수요를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기업들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등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을 펴야 세금도 저절로 잘 걷히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경민 기자

아직 괜찮다지만 … 확확 늘어 문제
나라빚 비교해 보니

1992년 유럽공동체(EC)가 정치.경제적 통합체로 나아기기 위해 합의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르면 회원국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나랏빚 비율을 60% 이내, 통합재정수지는 -3% 이내로 지키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에 견주어 보면 한국은 나랏빚도 적고, 재정수지도 건전한 나라다.

기획예산처 분석에 따르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30.3%, 내년에 31.9%를 기록하게 된다.

통합재정수지도 올해는 GDP 대비 0.2% 흑자다.

선진국 클럽이라고 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해도 한국은 빚 걱정이 크지 않은 국가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2004년 말 기준으로 미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63.4%이고, 일본은 157.6%나 된다. OECD 회원국 평균이 76.4%다. 한국보다 최소 두 배 이상 높다.

하지만 한국의 나랏빚이 늘어나는 속도를 보면 놀라게 된다.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 나랏빚은 GDP 대비 12% 수준인 60조원대였다. 하지만 2006년에는 280조원이 될 전망이다.

10년 만에 무려 4.6배나 늘게 된다. 돈 씀씀이를 줄이지 않은 채 경기를 살린다고, 복지를 확충한다고 쉽게 빚을 낸 결과다.

더구나 숫자를 선진국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사회복지 정책이 미흡하고, 국민소득이 낮은 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을 선진국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은 앞으로 돈 쓸 곳이 널려 있다. 사회보장 확대와 통일 비용 마련, 공공기관 이전과 국방 확충 같은 대규모 국책사업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야 한다.

이미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데다 출산율도 낮아 정부는 앞으로 노인들에게 국민연금 등을 많이 지불해야 한다.

이 때문에 지금처럼 정부가 빚을 펑펑 내면 부담은 모두 후손에게 돌아가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김종윤 기자

장밋빛 전망치 … 과연 뜻대로 될까
내년 세입 '구멍' 벌써 우려

매년 예산 상 거둬들일 세금 전망치와 실제 거두는 세금 액수는 어긋나게 마련이다. 한국의 과거 10년간 세수 추계 오차는 평균 2.9%였다. 미국은 오차가 평균 10%나 된다. 지난해는 계획보다 덜 걷힌 세금이 4조6000억원이다. 예상치에 비해 3.5%의 오차가 났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차이가 나지않도록 하는 게 정부의 책무다. 그런데 정부의 내년 예산안이 발표되자마자 벌써 내년 세입 예산에 구멍이 날 것으로 우려하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내년 경제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예산을 짰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내년 실질 경제성장률을 5%, 민간소비증가율을 4.4%, 명목임금 상승률을 7.2% 안팎으로 전망했다. 이 기준에 따라 소득세는 내년에 27조7000억원이 걷혀 올해(24조5000억)보다 12.9%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3년 만기 회사채 금리(AA-)가 올해 4.6%에서 내년에 5.5%로 오를 것으로 전망하면서 이자소득세가 늘고, 8.31 부동산대책에 따라 내년에 부동산을 파는 사람이 늘면서 양도소득세도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근로소득세는 명목임금 상승률에다 취업자 증가 등으로 10%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법인세는 법인세율이 2%포인트 내려간데다 올 상반기 기업들의 실적이 부진하면서 올해보다 9.4%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지난 몇 년간의 실적치와 내년 거시경제 환경을 고려한 세금수입 모델을 바탕으로 이런 전망치를 산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년에 5%의 경제 성장을 달성할지부터가 미지수다. 특히 고유가와 원화가치 강세는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인데다 소비와 투자가 살아난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민간소비는 올 1분기에 전년 동기에 비해 1.4%, 2분기에 2.7% 늘어나는데 그쳤다. 소비자 심리지수는 올 초에 반짝 나아지더니 중순 이후부터 다시 나빠져 5월 99.2에 달했던 소비자기대지수가 8월엔 94.8까지 빠졌다. 8.31 부동산 종합대책으로 건설경기가 침체하면 내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내년 세입예산안에 포함된 소주와 액화천연가스(LNG)의 세율 인상도 벌써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의해 제동이 걸려 수정해야 할 판이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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