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수교수 『호칭사용의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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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식구나 친족에 대한 호칭이 점차 민주화되어 가고 있다.
이는 한양대 서정수교수 (국어학)가 서울의 남녀시민 1천명을 상대로 조사한 「호칭사용의 실태」에서 나타난 것.
이 조사에 따르면 아내가 남편을 「여보」라고 부르는 경우가 64.5%로 가장 많고 다음이22.1%인 「아빠」 였다. 이밖에「자기」는 10.3%, 「영감」은 1.2%,「임자」는 0.9%였다. 남편이 아내를 부를 때도 「여보」가 83.2%로 가장 많았고 「애엄마」는 6.6%, 「자기」는 4.8%, 「임자」는 3.7%, 「마누라」는 1.7%였다.
가장 많이 쓰이는 「여보」는 근래에 와서 더욱 널리 쓰이고 있는데, 본래 이말은「평교간에 부르는 말」이어서 타당한 쓰임이라 하겠다.
「여보」는 50년대말까지의 사전만 해도 부부사이에 쓰이는 호칭이라고 풀이되어 있지않았고 「여보시오」의 좀 낮은말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따라서「여보」가 부부사이의 호칭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것은 60년대 이후가 아닌가 추정된다.
「여보」가 널리 쓰이는것은 종래에 적당한 호칭이없어 각 지방이나 가풍에따라 각양각색이었고, 또 듣기에도 어색한말이 쓰였던 점을 생각하면 퍽 다행한 일이 아닐수없다. 또 「여보」는 부부사이의 평등관계를 반영한다. 만일 아내가 남편을 부를때 「여보십시오」라고 하고 남편이 아내를 부를때 「여보」라고 한다면 말에서 벌써 상하관계가 두드러지고 말것이다.
또 한가지 주목되는 호칭은 「아빠」라는 말이다.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 이말이 쓰이는데, 「애아빠」라고 하면 별로 나무랄것이못되나 그냥 「아빠」라는것은 다소 문제가있다.
우선 자신의 「아빠」와 아이의 「아빠」가 혼동되기 쉽고, 또 부부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호도하는 느낌도 있다.
젊은부부, 특히 애인사이에 한때 유행된적이 있었던 「자기」는 어떤 지방에서 「이녁」이라고 부르는것과 일맥 상통하는것이다. 따라서 다소어색한 느낌을 주지만 일리가 있기는 하다.
한편 다른사람 앞에서의 부부끼리 호칭은 어떠한가.
이것은 주로 손위 사람에게 쓸때가 문제되는것으로, 아내가 남편을 가리킬때「(애) 아빠」 가 41.5%로 가장많았다. 「그이」와 「바깥양반」은 똑같이 16.5%씩이었고 「아범」은 10.4%, 「주인」은 8.4%였다.
남편이 아내를 가리켜부를때는 「집(안) 사람」이 가장 많았고(56.4%)「애엄마」는 19.3%,「그사람」은 11.4%, 「어멈」은 5%, 「안주인」은 2.1%였다.
아내가 남편을 가리킬켱우 「애아빠」나 「그이」는 무난하다고 하겠으나 「바깥양반」 은 좀 지나친말이다. 자기의 남편을 손위사람에게 가리켜 말할때 그처럼 높여서는 안되는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가리킬때 「집사람」 「안사람」이 많이 쓰이는데 무난한 호칭이라 하겠다.
한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호칭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압도적이고,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호칭은 「아버지」가 75%고 「엄마」와 「어머니」는 비슷한 정도로 쓰였다. 그러나 「엄마」 「아빠」의 쓰임이 무척 늘어나고 있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것은 젖먹이들의 호칭이어서 국민학교에만 들어가도 유치해서 안썼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에는 20대와 30대는 물론이고 40∼50대까지도 이를 쓰고있는 실정이며 앞으로도 늘어날 추세에 있다.
또 이것이 널리 쓰임은 오늘날 사회변동의 추세로 보아 자연스러운 일이며 인간관계를 격식적인 상하관계보다 비격식적인 횡적관계로 이루어가는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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