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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트렌드] 펜의 강적은 펜일 뿐

중앙일보

입력

예술의 도시 파리. 혁명의 도시 파리. 그리고 예술과 혁명이 만나는 지점에서 샘솟는 풍자만화의 도시 파리. 최근 테러에 희생된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가들을 포함해 파리에는 많은 풍자만화가들이 활약하고 있다. 이미 몇 백 년 된 전통이다.

지금부터 180여 년 전에도 국왕을 풍자한 만평이 문제가 돼서 그 만화가와 만평을 실은 시사주간지 편집장이 나란히 파리 법정에 출두한 사건이 있었다. 그 만화가가 바로 오노레 도미에, 오늘날 우리에게 ‘3등석 객차’ 그림으로 잘 알려진 19세기 사실주의 화가다. 시사주간지 이름은 ‘라 카리카튀르’, 즉 ‘캐리커처’였다.

도미에는 생전에 순수 화가보다 주로 풍자만화가로 이름을 알렸는데, 젊은 나이에 스타로 떠오른 계기가 바로 문제의 만평 ‘가르강튀아’(그림)였다. 이 만평에는 당시 국왕 루이-필리프가 16세기 풍자소설에 나오는 거인 왕 가르강튀아로 묘사돼있다. 그는 노동자들에게서 쥐어짠 세금을 거침없이 빨아들이는 중이다. 이 세금은 왕의 배를 불룩 튀어나오게도 하고, 왕의 옥좌 겸 변기를 통해 배설되기도 한다. 그 배설물은 각종 훈장과 이권 관련 법안들이다.

루이-필리프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만한 만평이었다. 만평만 보면 그가 마치 부패한 전제군주 같지만 그는 만평이 나오기 불과 1년 전인 1830년 7월 혁명을 통해 부르봉 왕조 복고 세력을 물리치고 왕위에 오른 입헌군주였다. ‘라 카리카튀르’가 창간될 수 있었던 것도 루이-필리프 정부가 언론·출판 규제를 대폭 완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책을 바꾼 초기부터 이렇게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만평을 실으니 말이다.

그러나 도미에처럼 입헌군주제가 아닌 공화제를 원했던 이들에게는 루이-필리프가 처음부터 못마땅한 존재였다. 게다가 왕은 점점 쌓여가는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의 갈등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고 있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1862)에 따르면 루이-필리프는 관대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만평 ‘가르강튀아’에 대해서는 몹시 화가 났는지, 고발 조치를 했고 결국 도미에와 편집장은 각각 6개월 징역을 살게 됐다.

그런데 도미에는 그 덕분에 스타가 되었고 끄떡없이 신랄한 만평을 계속해서 그렸다. 도미에의 초기작인 ‘가르강튀아’도, 그의 후기작에 비해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술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그러니 루이-필리프는 스스로를 위해서도 고발을 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그나마 오늘날 루이-필리프가 ‘쓰레기 같은 지도자’가 아니라 ‘의도는 좋았으나 실패한 지도자’ 정도로 이야기되는 이유는 문화예술계의 또 다른 대가인 위고가 『레미제라블』에서 루이-필리프를 우호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펜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펜뿐인 것이다. 정치권력이나 폭력이 아니라 말이다.

이번에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가들과 직원들은 도미에가 루이-필리프에게 당한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짓을 당했다. 그들은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을 빼앗겼다. 그런데 이 학살을 저지른 테러리스트들은 스스로에 대해서도 정말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이다.

테러를 당하기 전 샤를리 에브도는 호불호가 갈리는 언론이었다. 문제가 된 그들의 만평을 봤는데, 풍자가 거칠고 공격적인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뉴욕타임스는 이번 테러 관련 기사에서 문제의 만평들이 “의도적으로 공격적(intentionally offensive)”이어서 지면에 싣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대신 샤를리 에브도의 미덕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슬림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 등 그리스도교, 프랑스 자국 지도자들까지, 샤를리의 만평가들은 평등하게 신랄하게 조롱했다.
대부분의 풍자 당사자들은 무시나 고소를 택한 반면 테러리스트들은 폭력을 택했다. 그리고 “우리가 샤를리를 죽였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지금 파리 시민들은 너도 나도 “나도 샤를리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외치고 있다.

이제 호불호가 갈리던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는 프랑스인들, 아니 전인류가 몇백년 동안 생명을 바쳐온 가치인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니 테러리스트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인가. 총은 펜을 꺾을 수 없다. 펜의 맞수는 펜일 뿐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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