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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결국 디플레 … 최경환은 "저유가, 한국엔 호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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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제 금융시장이 저유가 충격에 흔들리고 있다. 두바이산과 미국 서부텍사스유의 값이 7일(한국시간)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자 글로벌 자금이 미국·독일·일본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쏠리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은 끝내 디플레이션 상태에 빠졌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가 한 해 전과 견줘 0.2% 떨어졌다”고 이날 발표했다. 유로존 물가 하락은 2009년 이후 처음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남유럽의 장기 경기 침체에 유가 하락이 겹친 탓”이라며 “지난해 9월 유가가 가파르게 떨어지기 시작한 이후 처음 나타난 디플레”라고 보도했다.

 유가 하락을 바라보는 정부와 시장의 시각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 정부는 유가 하락이 ‘약’이란 쪽이다. 정부는 올해 유가 하락 효과로 한국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 오를 거란 분석을 내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한 5개 국책연구기관이 이날 열린 올해 1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제출한 공동보고서를 통해서다. 이에 따르면 두바이유 기준 연평균 배럴당 63달러가 유지된다면 약 30조원의 실질소득 증가 효과가 나타난다. 연간 원유 수입액이 지난해보다 300억 달러(약 33조450억원)가량 줄어들어서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유가 하락은 우리 경제에 큰 호재”라며 “기업 생산비 절감으로 수출과 투자에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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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부총리

 다만 유가 하락이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기업의 생산비용 감소가 제품 가격 인하로 이어져야 한다. 이에 따라 소비가 늘면 기업은 다시 투자를 확대하는 선순환이 작동된다. 보고서는 유가가 10% 하락했을 때 석유제품을 비롯해 제품 가격이 따라서 인하되면 투자·소비가 9조5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국내총생산(GDP)의 0.76%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러나 기업이 제품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효과는 달라진다. KDI 김성태 연구위원은 “유가 하락이 기업의 수익성 개선뿐 아니라 가계의 직접적인 소비 증가로 이어져야 하는데 생산비용 감소분이 모두 기업에만 머무른다면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제고 효과가 미미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최 부총리가 석유제품 등의 가격 인하를 강하게 주문하고 나선 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은 불안해하고 있다. 유가 하락으로 물가가 더 내려가면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질 수 있어서다. 유로존 디플레 사태가 대표적인 본보기다. 국내 경제의 석유 의존도가 예전 같지 않은 점도 고민거리다. 신한금융투자 윤창용 연구위원은 “석유 의존도가 과거보다 훨씬 낮아져 유가 하락의 이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유가로 인한 신흥국 외환위기는 당장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특히 러시아는 금융위기, 베네수엘라는 국가 부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불똥이 다른 신흥국으로 튀어 국제투자 자본이 대거 신흥국에서 탈출하는 사태로 발전하면 국내 금융시장도 충격을 피해 가기 어렵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유가가 낮아지면 한국의 GDP 성장률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지만 다른 요인을 배제했을 때의 가정치”라며 “유가 하락의 속도가 빠르고 변동성도 높아 예상보다 부정적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더욱이 1980년대 저유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증산 같은 공급 요인이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당시 사우디는 2차 오일쇼크 직후 원유 생산량을 아주 가파르게 늘렸다. 이와 달리 최근 저유가 사태는 사우디의 셰일가스 견제나 미국의 러시아 제재 같은 공급 요인 외에 중국의 성장 둔화, 유로존 침체 등의 수요 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세계 경기가 침체돼 석유 수요가 줄어든 게 유가 하락을 부채질한 요인인 만큼 호재로만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으로 위기에 직면한 유럽, 아베노믹스 실패 가능성이 대두되는 일본, 경제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중국까지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경제권도 위험에 처한 상태다. 저유가로 인한 시장 충격을 증폭시키는 요소들이다.

 국내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윤창용 연구위원은 “국내 원유 도입량은 2000년 8억8000만 배럴이고 지난해 9억 배럴이었다. 경제 규모가 커진 데 반해 원유 수요가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건 그만큼 한국 경제의 석유 의존도가 낮아졌다는 의미”라며 “과거와 비교했을 때 유가 하락의 이득이 희석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세종=이태경·박유미,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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