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서 변덕날씨가 "정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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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번 인수봉사고는 악천후등 만약의사태에 대비해 복장이나 장비, 식량등 필수 준비물을 갖추지 않은채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험난한 봉우리에 봄나들이하듯 가벼운 차림으로 올라간데 원인이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변덕이 심한 우리나라의 봄날씨에 그것도 높은 산위에서 돌풍이나 눈보라·기온급강하등의 기상변화를 전혀 예상하지 않고 이에 대비하지 않았다는것은 산악인이 지켜야할 기본수칙을 무시한것이다.
해발8백3m의 인수봉 조난자들은 과거 서울근교에서의 조난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산행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조난 그자체가 죽음으로 이어지는 참극을 빚은 것이다.
수년전겨울 해방1천9백50m의 한라산에서는 서귀포 표선산악회원9명이 눈보라속에 조난당했다가 4일만에 전원구조된적이 있다.
조난에 대처하는 산행준비와 행동여하에 따라서는 조난이 곧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수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보내고있는 지상과달리 높은산에서는 쾌청하고 포근한 날씨가 「비정상」이며 변화무상한 날씨가 「산악기상의 정상」인셈.
사고현장부근에서는 상오9시30분부터 강풍이 몰아치고 낮12시에는 진눈깨비가, 그리고 하오3시부터는 폭설이 쏟아지면서 기온도 영하로 곤두박질했다. 풍속은 최고 초속12m였다. 이런 기상조건을 감안할때 인수봉정상에서의 이날밤 기온은 영하10도안팎, 조난자들의 체감온도는 그보다 훨씬 더 낮았을 것이다.
그것은 지상에비해 산에서의 기온은 고도1백m마다 1.0∼1.2도씩 내려가고 풍속에도상당한 영향을 받는데다 이날따라 눈, 비까지 퍼부어 지상과는 최소한 15도정도의 기온차가 있었을것이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이번 조난사고가 대형참극으로 확대된 것은 ▲동반자들의 체력및 기술부족 ▲산행질서혼란 ▲위험코스에 대한 사전통제미흡 ▲긴급구조 체제의 취약성등을 그 원인으로 지적할수 있다
평소 주말이면 항상 1백∼2백명의 클라이머들로 붐비는 인수봉은 이처럼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같은 코스로 오를수도, 정상에 머무를수도 없고 차례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자일이 서로 얽혀 쓸수없게 되어 하강하는데 곤란을 겪기 일쑤이다. 각기 리더를 달리하고 여러팀이 올라갈때 이같은 무질서현상이 일어난다.
71년11월27일의 인수봉 조난도 이번사고와 같은 기상급변을맞아 각팀이 서로 앞을 다퉈 내려가려다 결국 어느 한팀도 제대로 내려오지 못한채 한꺼번에 변을 당했다.
또 이들 각팀이 6, 7개의 인수봉코스를 속속들이 잘알고 거기에 필요한 장비·기술등이 있었다면 이번처럼 한두코스에 몰려 혼잡을 가중하지 않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동반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위기에 처해있으면서도 기진맥진한 상태에 이르기전까지는 조난당한것으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어 구조를 요청했을때는 이미 때가 늦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대낮에 일어난 사고를 10여시간이나 늦게 구조현장에 도착하는등 구조체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있다.
인명피해 사고 예방에 1차적인 책임이있는 경찰은 이처럼 위험천만한 등산코스에 어느팀몇명이 언제어떤코스로 올라갔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이는 사고위험을 내버려둔것이나 다름없다.
알프스지역처럼 자격시험을 거쳐 일정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리더나 가이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코스마다에 등반의 난이도를 매겨 적정수준의 등반을 즐기도록 유도하는등 산악계의 적극적인 사고예방조치가 시급한 과제이다. <홍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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