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책맡아 뒷바라지가 걱정"|채문식 국회의장부인 김성숙여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성북구 삼선동 로터리 한 길가의 3층병원 『김성숙숙의원.』새로 입법부의 장이된 채문식 국회의장의 부인 김성숙여사(57)가 운영하는 산부인과 전문 병원이다. 하오 6시가 넘은시각, l층 진료실에서 나온 김여사는 노란 블라우스에 올리브색 스커트, 그 위에 흰가운을 덧입은 근무복 차림이었다.
『그동안은 저를 찾는 환자들을 치료하고, 그 양반과 네 아이를 보살피고 7남매의 맏며느리노릇으로 워낙 생활에 충실타 보니 다른 것에는 눈 돌릴 틈이 없었습니다. 이제 바깥분이 중책을 맡게 되시니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걱정이 많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려운 고비를 용케 넘겼구나 싶어 제자신 대견할 때가 있습니다. 해방직후 결혼할 당시부터 정치에 뜻을 가진 분이라 어려움을 각오했지만 50년대말 정치격변기에 세번이나 연거푸 낙선을 하셨을 때는 정말 힘들었읍니다』
병원과 집은 선거자금 마련을 위해 다 팔아 없앴고 적지 않은 빚까지 끌어않은 채 남의 집단간방을 얻어 병원을 차려야 했던 적도 있었다. 낙선 후 채의장이 하는 일 없이 외출할 때는 용돈에 더욱 신경이 쓰이더라고 한다.
해방전 경성여의전 학생일 때 경성제대 법문학부에 재학중인 채의장을 만나 3년여의 사귐 끝에 결혼했다. 김여사는 친정이 평양으로 독실한 기독교의 일찍 개화된 가정의 맏딸. 반면 채의장은 경북 문경의 전통적 유교가정의 7남매 중 맏이라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힘든 시집살이도, 경제적 어려움도 모두 신앙과 그 양반의 따뜻한 마음씀이 있어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입원실도 없이 병원을 차렸을 때는 밤3, 4시에도 급한 산모가 있으면 왕진을 가야했습니다. 그럴때면 항상 그 양반이 진료실에 나와 기다려 주셨어요. 목이멜 정도로 고마왔읍니다.』
자신이 의사였기 때문에 남편이 돈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고 이웃에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이 그는 감사하다고 말한다. 「돈은 잘 못벌지만 항상 월급봉투는 꼬박꼬박 전하고 되도록 용돈은 안쓰는 남편」이 아내는 감사하고 감사하다.
남편의 선거 뒷바라지, 4자녀와 6명의 시댁 동생들을 교육시키느라 김여사는 약간의 여유돈만 생기면 장롱밑에 저축을 했다. 그래서 지금도 남편은 돈이 필요하면「그 장롱밑 돈 좀 꺼내지』한다며 김여사는 웃는다.
요란한 건강관리 보다는 채의장이 집에 돌아오면 항상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도록 하는데 신경을 쓴다는 김여사. 그가 바쁜일과 중에도 특별히 마음을 쓰는 것은 채식중심의 구수하고 소박한 향토 음식을 즐기는 남편의 식성에 맞춰 팥잎국, 칼국수 등 음식장만을 하는 것.
젊은시절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 골몰한 때문에 양쪽 어깨가 불편하다는 김여사는 의장공관에 들어가게 되면 처음에는 환자로 만났지만 이재는 가족처렴 가까와진 지난 23년 정들인 이웃을 떠나는 것이 못내 섭섭하단다. 이제는 영어공부와 요리공부를 할 생각이라고. 채의장과의 사이에 경철(34) 경호(31) 경원(30) 경탁(26) 등 장성한 3남1녀. <박금옥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