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좌수표의 요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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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발행지가 기재안된 당좌수표는 적법성이 없다는 법무부의 유권해석이 새로 나와 경제계에 큰 파문이 일고있다.
이같은 해석은 현재 유통되는 당좌수표의 대부분이 발행지 기재없이 발행, 통용되어온 점에 비추어 수표거래에 큰 충격과 혼란을 줄 우려가 있다.
법무부와 검채의 이번 결정은 곧 거액의 부도를 내고도 발행지기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을 면할수있기 때문에 기존의 수표거래 관행으로 보면 실로 혁명적인 것이된다.
우리는 이같은 새 유권해석이 광범한 파문을 무릅쑬만큼 긴절하고도 현명한 결정이었는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수표의 요건을 둘러싸고 사법부와 검찰 또는 각각의 내부에서 조차 논란의 여지가 있어온 점을 모르는바 아니다.
또 민쟁소송에서 수표의 요건을 엄격히 따져 언제나 피고에게 유리하게 판결해온 관례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수표의 적법성을 둘러싸고 통일된 기준이 설정돼야할 필요성도 충분히 인정된다.
그러나 이런 여러 이유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새로운 유권해석과 검찰의 처리 기준변경은 사회적인 충격과 피해가 더 커질수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수 없다. ,
무엇보다도 형사사건의 경우 수표거래에 따른 엄연한 수재자와 피해자가 실재한다는 현실의 부정은 비논리적이다. 법원과 검찰이 지금까지의 각종형사사건에서 발행인이 액면가상당의 이익을 보았다는 점을 중시하고 발행지기재여부에 관계없이 발행인을 처벌하고 유죄로 판결해온 것도 바로이런 상관항을 인정한 결과다.
법리를 엄밀히 따져야하는 법조계로서는 수표의 요건까지도 되도록 엄밀히 해석하려는 자세를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리로 따져도 현행 수표법은 발행지 기재없이도 적법성을 주장할수있는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다. 동법2조3항은 발행지 기재가 없는 수표도 발행인의 명칭에 부기한 지에서 발행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규정하고있다.
이 경우에 대부분의 당좌수표가 발행지기재없이 상호와 발행인명의 기재만으로 통용되고있으나 발행인의 상호나 명칭만으로도 발행지를 유추할수 있으므로「지를 부기」한 것으로 간주할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법리보다도 더욱 증시돼야할 점은 바로 상거내관행이란 점에서 이번 결정은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킬수 있다. 수표의 요건울 따지는 일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법리해석에 못지않게 관행이 존중되어온 점을 간과할수 없다.
발행지기재가 결정적인 강건이 될 수 있느냐에도 이론이 없을수 없을뿐더러 실제로 영·미법계통의 수표관계법은 이를 중요요건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우리사회에서도 이런관행에 익숙해져왔다.
수표요건을 둘러싼 기준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를수 있으나 그 가장 중요한 기준은 역시 그 시대의 거래관행이 돼야하며 그것은 수표거래가 신용회사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일본의 대법원이 심지어 백지수표까지 적법한 수표로 간주한 판례룰 남긴것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다.
이번 유권해석의 발단이된 가계수표는 통상의 당좌수표와는 달리 발행지역을 유추하기 어렵고 거래에 따른부작용이 없지않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신용의 미발달에 따른 과도적인 부작용일뿐이다. 따라서 이런 가계당좌수표는 발행지기재를 중시하되 일반당좌수표는 종전대로 관례에 따르도록 하는것이 충격과 혼란을 줄이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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