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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산업법 개정안 공방 가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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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청와대가 7월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개정안의 부칙 개정 경위를 조사 중인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여당 일부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삼성 봐주기'라고 의혹을 제기했던 사안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은 23일 "7월 국무회의에서 법 개정안 부칙 조항이 통과될 때 논란이 있어 사실관계를 비롯, 부칙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경위를 파악하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7월 중순부터 재정경제부.금융감독위원회 등 관련 부처 공무원을 조사했다.

재경부와 금감위는 "의혹에 대한 내사가 아니라 부칙을 개정하면서 조항이 바뀌는 등 혼선이 있었던 데 대한 확인 차원이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 논란의 배경=1997년 3월 금산법을 제정하면서 금융회사가 고객이 맡긴 돈으로 계열사 확장에 나설 수 없도록 하는 조항(24조)을 넣은 게 발단이 됐다. 금융회사가 다른 회사를 지배하려는 목적으로 5%를 초과해 지분을 사들일 때는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법 제정 전에 삼성생명은 당시 보험업법(다른 회사 지분의 10%까지 매입 가능)에 따라 삼성전자 지분 8.55%를 사 놓은 상태였다. 법을 소급 적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는 법 제정 전에 산 지분까지는 사전 승인을 받은 것으로 인정했다.

잠복했던 문제는 98~99년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지분 25.6%를 인수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삼성과 중앙일보의 계열 분리 과정에서 삼성카드가 공정거래위원회와의 협의 아래 중앙일보의 에버랜드 지분을 인수한 것이다. 삼성으로선 공정위 결정을 따른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금산법을 위반한 셈이 됐다.

그러나 당시엔 금산법 24조 위반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었다. 정부는 부랴부랴 2000년 1월 처벌규정을 신설했지만 법 개정 이전에 일어난 행위를 소급해 처벌할 수 없었다. 결국 정부는 법 제정 후 처벌규정이 신설되기 전까지 매입한 지분에 대해 처벌하지 않되 의결권은 5%로 제한한다는 소급 조항을 부칙에 넣었다. 다만 주식의 계속 보유는 인정했다.

◆ 부칙 개정 논란=재경부는 2004년 11월 금산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때 소급 규정을 부칙 2조의 단서 조항으로 넣었다. 그러나 이를 정식 조항으로 분명하게 규정하라는 법제처 의견에 따라 2005년 7월 국무회의에 올릴 때는 부칙 4조의 1항과 2항으로 세분했다. 시민단체는 이를 두고 "입법예고 때 없었던 부칙 4개 항이 슬그머니 들어갔다"며 삼성 봐주기라고 반발했다. 논란거리에 불과했던 이 문제는 이정우 당시 정책기획위원장이 7월 노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부칙 개정 경위가 불투명하다고 지적하면서 전면으로 부각됐다. 부칙 개정 과정을 소상히 파악하지 못한 한덕수 부총리가 이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자 대통령이 경위를 파악하도록 지시했고, 중립적인 민정수석실이 나선 것이다.

◆ 쟁점은=삼성생명과 카드의 계열사 지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결국 어느 범위까지 법을 소급 적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시민단체는 공익이 크기 때문에 소급 적용을 해서라도 삼성생명과 카드가 계열사 지분을 팔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위헌 소지가 있는 법을 정부가 발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 문제는 위헌 소송까지 가야 매듭이 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청와대가 부칙 개정 경위를 밝히기 위해 민정수석실까지 동원했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마치 법 개정 과정에서 비리 의혹이 있는 것처럼 비춰져 기업은 물론 정부의 신뢰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경민.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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