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진의 정치Q] '연인' 같은 대통령과 총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20일 오전 국무회의. 노무현 대통령은 6자회담의 타결 의의를 새기며 즐거워했다. 인터넷을 검색한 이해찬 총리가 "주가가 13포인트 오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아니 총리께서는 언제 또 그걸 보셨습니까"라며 반겼다. 그는 상체를 크게 기울여 총리의 컴퓨터를 같이 들여다보았다.

국무회의장에 실시간대의 주가가 등장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소꿉친구 같은 대통령.총리의 모습은 더욱 독특했다. 한 국무위원은 "데이트하는 연인 같았다"고 느낌을 전했다.

대통령과 총리의 밀월이 현 정권의 주요 특징이 되고 있다. 역대 총리 30여 명 중 대통령과 이렇게 가까웠던 이는 없다. 상당수가 얼굴마담이었다. 실세였다는 김종필 총리(1971~75년)도 박정희 대통령의 견제를 받았다.

운동권 출신의 한 국무위원은 "측근이라는 이병완 비서실장, 김병준 정책실장, 문재인.이강철 수석, 그리고 이호철 국정상황실장 등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부하다. 그러나 이 총리는 '동반자급'"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총리실이 자꾸 커지고 대통령 참모들이 총리에게 꼬박꼬박 보고하는 걸 보면 총리의 위세가 대단하긴 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과 이 총리는 같이 정치를 시작한 88년 이래 17년 동안 연대하고 있다. 지금도 총리는 행정을 장악하면서 대통령의 빈구석을 메워주고 있다.

대통령은 주변에 "총리와 나는 코드가 맞다" "총리가 정책을 깊이 안다" "총리가 내정을 잘 챙겨주어 내가 다른 일에 전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민주당 최고위원에 출마했을 때 이해찬 의원이 꽤 큰돈을 보태준 것을 잊지 않고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유례없는 밀월은 그러나 부작용을 낳고 있기도 하다. 대통령은 "총리에게 권력을 맡겨도 나라는 문제가 없겠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결국엔 "권력 포기 용의" "야당에 넘길 수도"라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실험에 성공했다 믿으니 사고(思考)가 비약한 것이다.

힘이 실리자 총리가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와는 반대로 총리실엔 자꾸 비만형 조직이 늘고 있다. 가뜩이나 '소신'이 강한 이 총리는 더욱 거침이 없다. "시.도지사 중에 대통령감이 없다"는 말까지 한다. 국가 시설(총리공관)에서 국가 예산(판공비)으로 친목 잔치(여당 의원 부인들 만찬)를 하려고도 했다. 대통령이 권력을 자제하니 총리 권력이 커지는 풍선 효과가 생기고 있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