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의 야구노트] 50세 현역, 세월을 아웃시킨 사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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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마사가 만 50세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 오치아이 히로미쓰 주니치 단장은 2012년 취임하면서 “야마모토가 현역으로 뛰기를 원한다면 은퇴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AP]

“저 친구는 제2의 가네다가 될 수 있다.”

 일본 프로야구의 명감독 호시노 센이치(68)가 NHK의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던 1984년. 그는 주니치의 신인 왼손투수 야마모토 마사(山本 昌)를 처음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키 1m86㎝의 건장한 체격을 갖춘 야마모토는 일본 통산 최다승(400승298패) 투수 가네다 마사히로(82)를 떠올리게 했다. 단, 그가 던지는 걸 보기 전 얘기다.

 야마모토는 가네다의 등번호 34번을 달고 있었다. 가네다처럼 온몸을 비틀어 공을 던졌다. 그러나 야마모토의 직구는 가네다보다 훨씬 느린 시속 130㎞ 안팎이었다. 호시노는 그의 피칭을 지켜보더니 “가네다가 되긴 어렵겠군”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야마모토는 데뷔 후 4년 동안 1군에서 승리가 없었다. 1988년 주니치가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갔을 땐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그를 상대해 주지 않았다. LA 다저스의 전설적 투수 샌디 쿠펙스(80)는 “저 친구는 트럭 운전을 해야겠구먼. 야구를 한다면 (공이 느리니) 사이드암으로 던져야 할 거야”라며 혀를 찼다. 야마모토는 결국 가네다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가네다보다 오래 던졌다. 그리고 프로 32년째를 맞는 2015년에도 만 50세 나이로 마운드에 오른다. 지난해 말 주니치와 연봉 4000만 엔(약 3억7000만원)에 계약한 그는 “내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에 들고 싶다”고 말했다.

야마모토 마사는 선동열(오른쪽)과 함께 뛰었다. 선동열은 1996~99년 주니치 소속이었다. [중앙포토]

 야마모토는 지난해 무릎 부상 때문에 거의 2군에 머물렀다. 9월 5일 한신전에 딱 한 번 등판, 5이닝 무실점으로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고령 등판과 승리 기록(49세25일)을 세웠다. 올해 선발 등판해 승리한다면 메이저리그 제이미 모이어(53·은퇴)가 2013년 세웠던 세계 최고령 선발승 기록(49세150일)을 경신한다. 그는 통산 219승(165패)을 기록 중이다. 자신을 혹평했던 호시노가 주니치 감독을 맡았던 11년(87~91년, 96~2001년) 동안 팀에 93승을 선물했다. 꾸준했지만 화려하진 않았다.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세대도 아니었고, 그럴 실력도 없었다. 그저 20대에는 1군에 살아남기를, 30대에는 매년 10승을, 40대에는 5~7승을 목표로 달렸다.

 그의 ‘느려터진 공’은 마흔 살에 가까워지면서 오히려 빨라졌다. 만 43세였던 2008년에는 최고 시속 143㎞를 기록하며 11승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스피드가 뚝 떨어졌지만 야마모토는 지금도 열심히 공을 던지고 있다.

 야마모토의 전략은 32년째 똑같다. 시속 130㎞의 직구를 타자 시야에서 가장 먼 바깥쪽 낮은 코스로 던지는 것이다. 1996~99년 주니치에서 뛰었던 선동열(52) 전 KIA 감독은 “야마모토는 바깥쪽 낮은 직구 하나로 살아남은 투수다. 그 공을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던지기 위해 스프링캠프에서 매일 300~400씩 불펜피칭을 하더라”면서 “일본 투수들의 훈련량이 워낙 많기는 하지만 야마모토는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이 던지는 선수로 유명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선 전 감독이 “그렇게 많이 던져도 괜찮은가”하고 묻자 야마모토는 “원하는 곳으로 정확히 던지기 위해서는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마음 같아선 더 던지고 싶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야마모토의 직구 비율은 50% 정도로 꽤 높은 편이다. 남들보다 시속 15㎞ 정도 느린 공을 정확하게, 공격적으로 던진다. 제구력의 장인(匠人)이라 불릴 만하다.

 그는 일본인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다. 섬세한 기술에다 성실함과 열정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야마모토는 더 많은 땀을 흘린다. 체력이 떨어지는 걸 노력으로 보충한다. 일본 닛칸스포츠 기자에게 야마모토의 특장점을 물었더니 “눈에 보이는 건 없다. 다만 투지 하나만큼은 최고”라고 답했다.

 야마모토는 몇 년 전부터 주니치의 감독 후보로 꼽히고 있지만 여전히 선수로 계속 뛰고 있다. 현재 주니치 감독은 야마모토의 공을 받았던 후배 포수 다니시게 모토노부(45). 야마모토는 매 시즌이 끝나면 12월까지 돗토리현에 가서 재활훈련을 한다. 연말에 열흘 정도만 쉬고 매년 1월 2일부터 다시 훈련에 들어간다. “오래된 컴퓨터는 부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서.

 야마모토는 부상 탓에 지난 5년간 15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주니치 구단은 “야마모토가 은퇴를 결심하기 전까지 계속 뛰게 할 것”이라며 매년 계약을 연장하고 있다. 50세가 된 야마모토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토리(さとり) 세대(의욕이 없는 일본의 젊은 세대)’의 귀감이 될 거라고 주니치는 믿고 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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