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무개념 방송 … '도긴 개긴'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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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을미년에 태어나 순하게 살라고 ‘을순’이라 짓자. 이처럼 성의 없이 만들어진 이름도 없으리라. 어쨌거나 을미년이란 말이 귀에 익숙했던 이유는 올해가 60년 만에 맞는 환갑이라 그런가 보다. 모쪼록 올해는 즐거운 뉴스거리가 넘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웃는 모습이 아름다운 한 여자 아나운서가 있었다. 좋은 뉴스뿐 아니라 끔찍하거나 슬픈 뉴스를 전할 때도 생글생글. 아마도 그 모습이 그녀가 거울을 보며 찾아낸 예쁜 표정이었던 게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내뿜는 그녀의 환한 미소. 잔혹한 토막살인 사건이건,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묻지마’ 살인이건 모든 뉴스를 생글거리며 보도하는 그녀를 볼 때마다 괴로웠는데, 얼마 후 그녀는 TV에서 영영 사라져버렸다. 시청자 시각은 다 비슷한 모양이다.

 그런데 요즘 몇몇 종편 TV도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다. 종합편성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낮 시간 내내 전문가 두서너 명이 교대로 나와 사건·사고에 대해 ‘씹고 뜯고 맛보며’ 뉴스를 분석한다. 사실 사건·사고란 것은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 다 심각하다. 우스개 거리 소재는 아닌 게다. ‘잠적상’이니 ‘소품상’이니 ‘2014 인물 어워즈 시상식’을 한다면서 이미 백골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을 놓고선 목소리까지 흉내 내며 깔깔거리고 비아냥거리며 조롱하고. 외국에서 이미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땅콩 회항’ 사건은 ‘땅콩 때문에 콩밥 먹게 생겼다’며 다들 고개까지 젖히며 깔깔 웃기까지 한다. 정치평론가, 변호사, 교수가 각기 전문 분야와는 무관하게 지껄여대는 찜질방 아줌마 수준의 수다들. 마치 ‘누가 누가 더 웃기나’ 프로를 보는 것만 같다. 사실이지 그들 전문가의 시선으로 날카로운 분석을 해야 할 뉴스거리는 많다. 세월호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선장, 부선장, 기관사들만 잡아 가두면 끝나는 건지. 찌라시는 정말 찌라시에 불과한 건지. 살인·폭력은 줄어도 성범죄는 느는 이유가 뭔지.

 엊그제. 성형외과 수술실에서 마취 상태 환자를 옆에 두고 케이크에 촛불을 켜놓고 생일 파티 하는 사진이 뭇매를 맞았다. 환자의 인권을 무시한 처사며 수술실을 오염시키는 불법행위라 했다. 뉴스 프로란. 뉴스만이 아니라 시청자에게 함께 전달될 감정까지 배려해 전달해야 한다. 마치 사건·사고를 하루 종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이 뉴스를 난도질하는 몇몇 종편 방송의 작태나 수술실 생일 파티나 무개념인 건 마찬가지다. 다 거기서 거기, ‘도긴 개긴’이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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