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반비'들 "우리, 월드컵 경기장서 축구한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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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춘천 공지천운동장. 반비 축구단 선수들이 마지막 손발을 맞췄다. 23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개막하는 MBC 꿈나무 축구리그 본선에 대비한 훈련이었다. 전국에서 지역 예선을 거친 31개 팀과 달리 반비 축구단은 초청됐다. 지난해엔 3전 전패를 당했지만 올해는 최소한 16강에는 오르겠다는 선수들의 각오가 대단하다.

'반비'는 반달곰을 뜻하는 강원도 방언이다. 곰처럼 기운찬 65명의 '반비'들은 강원도 각지의 보육원에 소속된 초등학생들이다. 이들의 뒤에는 지난 5년간 팀을 이끈 김철수(51) 감독이 있다. 김 감독은 안양초등학교에서 이영표(토트넘 홋스퍼), 수원 세류초등학교에서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길러내는 등 15년간 초.중학교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2000년 학교를 그만 둔 김 감독은 재능은 있지만 어려운 환경에 있는 선수들을 길러보겠다는 뜻을 품고 춘천 일대 보육원을 돌아다니며 30여 명을 모아 축구팀을 만들었다. 식당을 운영해 번 돈으로 유니폼과 간식비를 마련했고, 관청을 돌아다니며 지원을 요청했다. 이런 노력이 열매를 맺어 2002년 강원도의 지원을 받아 정식으로 창단식을 할 수 있었다.

어려움은 여전히 많다. 훈련은 매주 두 차례 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한다. 샤워도 못한 채 자장면 한 그릇씩 먹고 보육원으로 털레털레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는 김 감독의 가슴은 미어진다.

이번 대회에 거는 김 감독의 기대는 크다. "연습할 시간만 충분히 있었다면 4강도 노려볼 실력"이라며 선수들을 칭찬했다. 선수들도 한껏 부풀어 있다. 박찬혁(12)군은 "2002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꺾었던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직접 뛴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쭈뼛 선다"고 말한다. "지난해에는 울 뻔했다"는 김민우(12)군은 "이번엔 꼭 우승하겠다"는 각오를 보인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MBC 꿈나무 축구리그의 우승팀은 장학금과 함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클럽팀에서 연수받을 기회도 얻는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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