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날 산업훈장 받은 얼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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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외길22년…광섬유개발 주역으로>
「기능인 천시풍조를 없애지 않고는 공업입국은 있을 수 없읍니다.』
10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근로자 최고의 영예」인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대한전선 통신부 압축주임 안흥렬씨(50· 서울 시흥동 198의5). 수상소감보다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 해소를 강조했다.
안씨는 만22년동안 통신용케이블에 겉껍질(피복)을 입히는 일만을 해왔다.
이일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 PVC나 폴리에틸렌 1∼3·5mm 두께로 옷을 입히는 작업. 케이블생산에서의 최종공정으로 섬세한 마무리가 요건이다.
그동안 그의 손끝에서 다듬어진 케이블의 길이는 어림잡아 20만km. 경부고속도로를 5백번 왕복하는 거리다. 그래서「전선박사」로 불리는 그의 고집스러운 외길 한평생은 한국통신산업발달사와 맥을 같이한다.
안씨가 대한전선에 입사한 것은 61년5월. 서울공고 기계과를 졸업, 군복무를 마친 후 말단기능공으로 케이블 생산분야에 첫발을 디뎠다. 당시만해도 우리나라 통신산업은 불모지에 가까웠다. 일본인이 쓰다버린 수동식 기계로 만들어내는 원시적인 제품생산이 월평균 20t정도. 『20년이 지난 지금 월평균 물동량은 1천4백t입니다. 7백배이상 생산능력이 향상됐지요.』 안씨는 지난 78년 우리나라 최초의 광섬유케이블 개발에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81년11월, 수십번의 시행착오 끝에 구로∼ 안양전화국간의 역사적인 실험통화가 성공했을 때 안씨는 감격에 겨워 혼자 울었다고 했다. 외곬인생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노동조합부지부장· 신용협동조합이사등 직책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 80년에는 신용협동조합의 기금으로 22억원을 들여 13평형· 17평형의 사원용 아파트를 건립, 무주택 동료사원 2백10가구에 내집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그의 한달봉급은 평균 37만5천원. 부인 홍덕희씨(45)와 맏딸, 대학과 중학에 다니는 아들등 다섯 식구의 가계를 꾸려가기에는 빠듯한 액수라고 했다.

<납땜 공정개선 선행모임조직>
음향기기 메이커 동원전자의 기능사원 허희숙양(25)은 앰프제작의 첫번째 공정인 기관(기판) 조립라인에서 50여명의 여자기능공을 이끄는 처녀조장.
72년 전남곡성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한뒤 일가족이 서울로 이사, 75년 동원전자에 입사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납땜인두를 들고 전선을 토막토막 잇는 일을 하루종일 계속했다. 앓아 누운 어머니 생각, 말쑥한 차림으로 학교에가 는 같은 또래 친구들 생각에 정신을 팔다 인두에 손가락을 데기도 하고 호된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이후 8년 ,허양은 모범적인 기능사원으로 동료· 선후배 여자 기능사원들에 남다른 정성과 사랑을 쏟은 보답으로 올해 근로자의 날 석탑산업훈장을 받게됐다.
허양은 회사의 품질관리 (QC) 분임조 활동을. 통해 연간 1천1백만원의 회사경비를 절약하는 공헌을 했다. 앰프와 튜너의 기판을 납땜기에 넣을때 쓰는 플럭스를 절약하는 방안을 고안, 채택됐다.
한 작업조의 친구가 늑막염에 걸리자 허양은 동료들과 의견을 모아 5백원씩을 거두고 자신이 저축했던 10여만원을 보태 입원시키기도 했다.
허양의 이 선행을 계기로 여사원의 모임인 물방울회에서는 매월 1천원씩 모으는 회비와 사내바자를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명절이나 연말이면 고아원· 양로원 위문을 연례행사로 하고있다.
한창 이성에 관심을 쏟고 탈선하기 쉬운 동생뻘의 처녀 50명을 거느리는 조장이 되면서부터는 퇴근후 빵집에서 조원여사원들의 신장상담을 하는등 세심한 신경을 쓰며 일요등산등 모임을 주선하기도.
한달 14만∼15만원의 봉급으로 서울 미아7동 851 산동네의 방2개짜리 집에서 8순할머니와 부모· 두 동생등 여섯식구가 산다. 두 언니는 출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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