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214. 야구월드컵 준우승 공신은 '믿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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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이제 달걀 먹어도 되겠네, 이제까지 이걸 먹고 싶어도 못 먹고 말이야…."

야구월드컵에서 일본과의 8강전이 끝난 다음날 아침 식탁. 김정택 대표팀 감독이 삶은 달걀을 집어 들었다. 그는 일본을 이기고서야 마음이 놓여 달걀을 먹는다고 했다. 왜? 그는 '달걀을 먹으려면 껍질을 까야 하고, 알(달걀)을 까면 경기장에서도 알을 깐다(실책을 한다)'는 '대중적 야구 미신'을 강하게 믿고 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이번 대회에 대표팀이 5전5승을 거둔 에인트호벤 경기장에 도착할 때마다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는 남몰래 에인트호벤 경기장 인근의 공동묘지를 찾았다. 첫날 공동묘지를 발견하고 그들의 혼을 위로한 뒤 경기에서 이기자 그 뒤에는 항상 묘지를 찾고 나서야 마음이 푸근해졌다는 것이다.

김 감독이 자기만의 징크스를 지키는 동안 코치와 선수들은 어땠을까. 양승관 코치는 한.일전 당일 경기장으로 출발하면서 숙소의 불(전등)을 모두 켜 놓았다. 전등만으로도 모자라 TV까지 켜 놓고 나갔다. 그때까지 침묵하던 대표팀의 타선이 불처럼 활활 타오르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선수들도 자기만의 의식을 치렀다. 한.일전을 치를 때 2루수 박기남은 태극기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언더 셔츠에 태극기를 그렸다. 왼손 투수 임재청은(몸에서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지 말라고) 경기 내내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외야수 조영훈은 에인트호벤 구장에서 치른 4경기에서 모두 이겼던 점에 착안, 에인트호벤에 갈 때 입었던 속옷과 양말을 꺼내 입었다. 그때까지 대표팀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분위기를 바꾼 선수들도 꽤 됐다. 투수 장원삼.내야수 김상현.유격수 문규현 등은 약속이나 한 듯 속옷을 뒤집어 입고 경기에 나갔다. 장원삼은 국기에 대한 경례를 그날은 하지 않았다. 투수 윤성귀는 유니폼을 입는 순서를 바꿨다. 유니폼 먼저 입고 양말을 맨 나중에 신다가 그날은 양말을 먼저 신고, 유니폼을 입었다.

감독.코치.선수들이 이처럼 승리를 위한 '의식'을 잊지 않고 챙긴 덕분일까. 한국은 예상을 깨고 일본에 완승을 했다. 이들의 의식이 경기력에 미친 영향은 뭔가. 그건 믿음이고, 자신감이고, 긍정적 동기 부여일 것이다. 내가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면서 내면적인 믿음을 갖고, 그 믿음은 자신감으로 발전하며 자신감이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믿음으로부터의 긍정적 도미노 현상'이다.

이처럼 믿음은 긍정적 자가발전이다. 모 스포츠용품업체는 한때 슬로건으로 영어 단어 한 개, 'believe(믿음)'를 내걸은 적이 있다. 스포츠에서 믿음이 차지하는 비중. 그 큰 힘을 이번 야구월드컵 한.일전을 통해 확실히 보았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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