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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미당·황순원문학상] 황순원상 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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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황순원문학상 최종심사 장면. 왼쪽부터 심사위원 김치수·김원일·조남현·황현산·전상국씨. 신인섭 기자

본심에 오른 10편 모두에서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두 가지 경향이 읽혔다. 인물이나 사건을 가장 인상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시각을 찾기 위해 특이한 화자를 내세운 서술 방식과, 메인스토리의 의미를 늘리기 위해 이질적인 텍스트를 끌고 들어온 구성이다.

구효서의 '소금가마니'는 작가가 어머니의 삶을 그려 나가면서 내내 지녔던 외경심이 독자들에게 거의 그대로 전해질지 의문을 안겨 준다. 어머니와 박성현의 관계가 좀더 구체적이고 흥미있는 내용을 갖추었더라면, 키에르케고르의 '공포와 전율'을 이끌고 들어온 수고가 더 빛을 발휘했을 것이다. 은희경의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은 메인스토리와 소련 코스모나츠 비화가 작가 나름의 감상(感傷)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한 채 부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말았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문장 한 줄에서부터 전체구성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치밀하게 조립해 가는 능력은 은희경이란 작가의 원숙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에서는 작가 박민규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세대 작가도 가난이라는 소재를 신선하게 처리할 줄 안다는 실례를 남긴 점, 눈물을 안으로 숨기는 희극적 터치를 꾀한 점, 끝부분에 가서 기린을 등장시켜 환상성의 기능을 한껏 살려낸 점 등에서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임철우의 '나비길-황천이야기2'는 나비떼의 출몰이라는 환상성과 황천이발관 주인이 드러내는 기괴함을 잘 연결했다. 그러나 나비선생이 끝내 자살하기까지의 과정이 다소 억지스럽다는 평이었다.

김훈의 '언니의 폐경'과 김연수의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전통적인 서사담론과 실험적인 서사담론, 또는 세태소설로의 귀결과 탐구소설에의 지향과 같은 차이를 보인다. 반면 독특한 서술자를 설정하여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는데 성공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김연수는 이번에 작가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수상작으로 결정된 김훈의 '언니의 폐경'은 여동생의 목소리로 50대 두 자매가 겪어가는 늙어감, 남편의 떠남, 자식들의 이기심과 배신, 잔잔하지만 분명한 허무감 등을 촘촘하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교직해내고 있다. 갈수록 정확성과 힘을 더해가는 작가 특유의 필치로 세태비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데까지 나아갔더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심사위원=전상국.김치수.김원일.황현산.조남현(대표집필:조남현)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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