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6자회담 합의, 핵 포기 행동으로 실천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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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타결돼 6개 항의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한때 결렬 위기에 처했던 이번 회담이 극적으로 합의를 본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에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면 한반도 정세는 그야말로 위기국면으로 치달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쟁점이었던 북한의 경수로 제공 요구를 우회하는 협상술을 발휘한 것은 잘한 결정이다.

공동성명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은 북.미가 서로 상대방이 절실하게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다는 점이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의 포기를 약속했다.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양국은 상호 주권 존중, 평화적 공존과 함께 관계 정상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물론 이런 내용은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나 2000년 북.미 공동 코뮈니케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그러나 양자 관계가 아닌 6자회담이라는 다자(多者) 틀 내에서의 합의는 그 의미가 더할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에서의 구속력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핵 동결'이 아니라 처음으로 '핵 포기'가 전제됐다는 점에선 더욱 그렇다.

'92년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엄수되고 실현돼야 한다'는 내용도 주목된다. 이 선언은 남북 모두에 핵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시설을 금지하고 있으나, 북한은 이를 노골적으로 위반해 왔다. 그러나 이제 이 선언이 남북 간만이 아닌 다자 차원의 약속으로 이행된 이상 북한은 과거처럼 이를 서슴없이 깨는 행태를 더 이상 되풀이해선 안 된다.

'별도의 포럼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협상키로 했다'는 대목도 눈여겨봐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처음으로 6자회담의 논의 대상에 포함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결국 공동성명은 북핵 문제의 해결을 넘어 한국전쟁 이후 조성된 한반도 냉전구도의 해체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이번 합의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한 하나의 전범(典範)이 돼야 한다.

문제는 공동성명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느냐다. 이번엔 잠복했지만 북한이 다시 경수로 제공을 이슈로 삼을 경우 북.미 관계 정상화 등 다른 쪽에서의 후속 협의도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 또 이를 구실로 어느 당사자가 합의내용 이행을 주저할 경우 사태는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남북한과 미국은 이번 합의가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는 자세를 갖고 추후 협상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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