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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조기교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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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도미솔 도미솔 도파라라…』계명을 외며 노랫소리에 맞춰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고사리 손이 안스럽게 보인다.
엄마 손에 이끌려 피아노학원에 다닌 지 6개월 째인 김미경양(5·서울반포아파트).
처음 하나, 둘도 제대로 세지 못했던 미경양이 이젠 제법 박자를 세며 피아노 앞에서 재롱을 부리게 된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모들의 극성, 또는 치맛바람의 대명사처럼 치부됐던 어린이 초기 교육이 최근 붐을 타고 있다.

<붐 타고 학원들 난립>
이 같은 경향은 어린이의 지능과 재능은 일찍 개발하면 할수록 효과적이라는 교육적 자각이기도 하고, 남들이 시키니까 나도 시킨다는 부모들의 경쟁심의 소산으로도 풀이되고 있다.
서울 대치동 아파트단지에 있는 E체육관. 태권도를 배우는 4살부터 6살짜리「꼬마무사」들의 구령소리가 제법 우렁차다.
집에선 응석꾸러기로만 보이던 꼬마들이 도복을 입고 구령에 맞춰·팔과 다리를 쭉쭉 뻗는다.
매트리스 바닥에 훌렁 넘어지기도 하고 달리고 뛰기도 한다. 편을 나누어 닭싸움도 하고 노래자랑도 한다.
『태권도장은 마음놓고 뛰놀 수 있는 공간입니다.』이필규사범은 꼬마들이 싫증내지 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데 특별히 신경을 쓴다고 했다.
이 사범은 태권도장이 꼬마들에게 무술을 익혀주기 보다는 예비사회생활을 익혀주는 곳이라고도 했다.
신체발육이 왕성하고 운동신경이 예민한 어린이는 1년 정도의 수련으로 공인 l품을 따낸다고.
유치원적령기에 들지 않은 어린이 과외교육이 종전에는 음악·미술·무용 등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외국어 학습 붐이 일면서 영어학습이 과열해졌고 이밖에도 태권도·수영·주산 둥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재능교육을 중시하던 종전의 교육관이 점차 전인교육화 (?) 또는 지능개발 방향으로 바뀌어 가는 추세다.
서울 반포아파트 단지에서 H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정강자씨(40)는 나이가 어릴수록 가르치기가 힘들지만 만3살부터는 미술교육이 가능하다고 했다.
정씨는 꼬마들에게 처음엔 동그라미와 선·색깔을 마음대로 그리게 하면 점차 자기 나름대로 형체를 갖춘 그림을 그리게 된다고 했다.
정씨는 꼬마들에게 음악과 동화 등을 들려주며 상상의 날개를 펴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서울대치동 E아파트단지에 있는 N주산학원에는 4∼5세 어린이 10여명이 주산실력을 연마하고 있다.
컴퓨터시대에 주산공부가 웬 일이냐는 선입견이 들지만 학부모나 학원 측의 생각은 딴판이다.
장남 (5) 의 주산학습에 따라 나온 주부 김모씨 (29) 는 『아이 아버지가 주산공부를 해야 일찍 지능을 개발하고 수리력과 기억력이 향상된다고 해 5개월째 주산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과열기미까지 보여>
이들 꼬마들이 주산학원에 등록하면 강사의 개별지도로 우선 숫자의 개념과 숫자 쓰기를 배운다.
6살짜리 지능이라면 2개월 이내에10단위의 덧셈과 뺄셈이 가능하고 1년이 넘게 계속하면 2급 수준(10만 단위의 계산) 까지 올라간다는 것이다.
N주산학윈 ▼노훈원장은 일단 주산을 익히게 되면 암산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배우게 돼 지능의 발달이 눈에 보인다고 했다.
신체발달과 인성교육을 목표로 하는 서울YMCA의「아기 스포츠단」은1년 코스의 아기교육전문기관. 아기 스포츠단은 수영과 체조·매스게임·놀이 등을 통해 운동능력을 향상시키고 명랑한 성격과 올바른 인성을 기르도록 계획된 프로그램.
5∼6세 어린이 80명을 모집하는 YMCA「아기스포츠단」은 지난달 4일 공개추첨때 3대1의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잠실YMCA에서도 「아기스포츠단」과 「아기수영단」1백60명을 모집, 3월초에 개강한다.
잠실YMCA 김윤규부장은 『도시어린이들의 운동부족이 점차 실각해지는 실정』이라며 어린이에게 운동과 놀이를 통해 움직임의 본능을 채워주고 단체생활에서 질서의식과 인성교육을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아기스포츠단」의 결단취지라고 했다.
어린이 초기 교육 붐을 타고 아파트단지와 주택가 등엔, 각종 교습소나 학원이 난립, 혹시 부실교육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낳고 있다. 이들 학원들은 꼬마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선물공세를 펴기도 하고 일부학원은 유니폼과 가방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화려한 작품발표회나 생일잔치·소품·야외훈련 등도 꼬마「고객」들의 흥미를 유도하는 방법.
학원 수강료는 한달 최저 1만원 (주산학원) 에서 3만원선 (피아노학원).
YMCA의「아기스포츠단」은 1학기분이 12만원이다.
우리나라의 유아교육은 유치원과 새마을유아원, 어린이선교원, 예·체능학원 등 여러 기관에서 행해지고 있다. 지난해 국회에서 논란이 된 「유아교육진흥법」에 따르면 어린이 선교원이나 예·체능학원에서는 유치원 행위를 할 수 없는데도 사실상 이곳에서는 「유치부」라는 이름으로 유아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전문교사캙시설부족>
이 같은 실정에서 예·체능학원이 부딪치는 벽은 유아교육 전문교사나 변변한 시설 없이 어린이들에게 전문적인 기능을 전수한다는 것이 무리가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있다.
연세대 정문자교수(아동학과)는『유아교육은 교사의 자질과 교육시설에 크게 좌우된다』고 강조하고 어릴 때 부모의 욕심으로 자녀들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기능이나 기술교육을 강요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교수는『전인교육을 통해 올바른 인성을 기르지 않는 조기교육은 자칫하면 절름발이가 될 위험이 있다』 고 덧붙였다.<한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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