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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칼럼

또 다른 딜레마, 이란 핵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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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험난한 협상이 몇 개월간 계속됐다. 그러나 결과는 없다. 서방은 이란의 핵 재처리를 막아보려 노력했지만 오히려 개도국들과의 갈등만 키우고 말았다.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내놓은 이란 핵 개발 보고서는 미국과 유럽의 트로이카(영국.독일.프랑스)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IAEA 조사는 '2년 전에 이란 핵 처리 시설에서 발견된 농축 우라늄 흔적은 파키스탄 등에서 수입된 것'이라는 이란 측 주장을 사실로 입증했을 뿐이다. 미국은 즉각 이 조사 결과를 '의미 없다'고 일축했다.

▶ 딜립 히로 영국 칼럼니스트.극작가

이란에 대한 유럽의 좌절감은 명백해졌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유엔 안보리를 통해 '우라늄 농축 권한을 영구 포기하지 않는 죄'로 이란을 처벌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는 오직 IAEA 이사회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IAEA의 35인 이사 가운데 15명은 비동맹운동(NAM) 소속이다. 191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116개국도 NAM에 속해 있다.

우라늄 농축을 둘러싼 다툼의 핵심은 '과연 개도국이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모든 핵 기술을 개발하고 사용할 권리가 있는가'에 있다. 테헤란의 답은 '그렇다'다. NAM도 동의한다. 유럽은 그 권리 자체를 부정하지 않지만 유럽이 이란에 핵 발전소를 건설해주고, 이란과 상업적인 연관성을 강화하는 대가로 이란이 이'특권'을 포기하기를 원한다.

만일 그런 계약을 체결한다면 이란은 핵 발전소의 운영에 관한 한 전적으로 유럽에 의존해야 한다. 이는 1979년 혁명 이념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다. 핵 문제를 연구하는 초당적 기구인 군비통제연합의 집행이사인 다릴 킴발은 "이란에 핵 기술은 국가 자존심의 원천이며, 옛 식민 지배자들에 대한 정치적.기술적 독립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유럽의 트로이카는 지난달 초 "이란이 핵 개발 권한을 영구히 포기한다면 상업적인 인센티브는 물론 핵 발전 설비를 건설해주겠다"고 이란 측에 제안했지만 테헤란은 거부했다. 빈에서 열린 IAEA 긴급이사회에서 유럽의 트로이카와 미국은 필요한 정족수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부득이 그들은 자세를 낮춰 이란에 우라늄 농축 관련 활동을 일시 정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무하마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에게는 이란 핵 활동 보고서를 제출해 달라고 부탁했다. 엘바라데이는 15쪽의 보고서에서 "이란은 투명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란이 금지된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종래 IAEA 주장을 유지했다.

이란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수 있는 길은 이란이 핵 비확산 체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찾는 것뿐이다. 그러나 러시아조차 "테헤란이 비확산 체제를 위반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IAEA 긴급이사회에서 브라질.인도.인도네시아.남아공 등 NAM 회원국들은 "서방 국가들은 광대한 유전을 갖고 있는 이란이 핵 발전소 건설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러시아에 대해선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천연가스 매장량을 갖고 있으면서도 수십 개의 핵 발전소를 건설 중이다.

계획적이건 우연이건 이란은 자신을 제3세계의 맹주 자리에 올려놨다. 서방 파워에 맞설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을 지닌 모습을 각인시켰다. 이 점이 바로 이란이 NAM 회원국들로부터 조용한 칭송을 받는 힘이 됐다. 앞으로 이란에 핵 포기를 강요하면 할수록 서방과 개도국 간의 틈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서방국가들의 '2중 잣대'는 이제 확연하게 자리 잡은 상황이다.

정리=진세근 기자

딜립 히로 영국 칼럼니스트.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