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성적 F" 취업난 대학생들 분노의 대자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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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30일 서울 경희대에 최경환 부총리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시험지 형식의 대자보가 붙었다. 최 부총리에게 낙제점인 ‘F’를 줬다. [임지현 대학생 사진기자(후원:캐논)], [뉴시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비판하는 알바노조 패러디물. [임지현 대학생 사진기자(후원:캐논)], [뉴시스]

“최경환 학생, 답안지 받아가세요(성적은 F).”

 30일 서울 경희대 중앙도서관과 노천극장 근처에 두 장의 대자보가 붙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정책을 비판한 내용이었다. 대자보는 시험지 형식을 빌렸다. ‘오늘날 한국 경제 위기의 해결 방법을 쓰시오’라는 문제에 최 부총리가 추진 중인 부동산 경기 활성화,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시간제 일자리 확대 정책을 답안으로 채웠다. 채점 결과는 낙제 점수인 F였다.

 경제정책에 대한 대학생들의 비판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지난 3일에는 연세대와 고려대에 최 부총리의 ‘정규직 과보호’ 발언을 비판하는 ‘최씨 아저씨께 보내는 협박편지’ 대자보가 붙었고, 경희대와 성균관대에도 대자보가 등장했다. 지난해 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대학가를 휩쓴 지 1년 만이다.

 높은 등록금, 청년 취업난, 비정규직 증가 속에 ‘삼포(취업·결혼·출산 포기) 세대’라 불리는 20대의 불만이 구체적 대상을 향해 표출되고 있다. 시험지 대자보를 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최휘엽(24)씨는 “최 부총리는 정규직 과보호 발언에 이어 비정규직 양산을 대책으로 내놨다”며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불안한 일자리를 양산한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의 분노는 지난 26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타운홀 미팅에서도 터져 나왔다. 김 대표는 ‘대학생과 함께하는 청춘무대’ 행사에서 “개인 사정상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젊어 고생을 하는 것도 사회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가 비판 여론에 직면했다.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불법 행위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김 대표가 무책임한 발언을 했다”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3일 후 “부당한 처우를 받았을 때 청년들이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하고 공권력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얘기였다”며 공식 사과했다.

 지난 정부부터 논의돼온 반값 등록금이 공약(空約)에 그친 데 대한 배신감도 적지 않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신재연(23)씨는 “2012년 대선 당시 여야 후보 모두가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했는데 이뤄지지 않았다” 고 말했다. “삼포 세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20대가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기성세대가 알고는 있는지 의문”(서울대 산업인력개발학과 권형구씨)는 지적도 나왔다.

 미래에 대한 불안도 청년들을 옥죄고 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신지용(24)씨는 “‘20대의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거나 ‘정규직 과보호’라는 인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불안한 비정규직이 아니라 결혼을 꿈꿀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리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교육학과 송모(26)씨는 “남자 친구나 나나 모두 학자금 대출이 천만원을 넘는 취업준비생”이라며 “두 사람이 결혼하면 전세는커녕 월세살이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경환 대자보’가 잇따라 등장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최경환은 대명사일 뿐 청년들의 불만이 기성세대를 향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대학생들은 한국 사회의 문제가 아버지 세대의 잘못에서 비롯됐다는 의식이 강하다”며 “사회 갈등이 계급 문제에서 세대 갈등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제시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1980년대의 체제 비판과는 달리 일자리·주택 문제 같은 생활밀착형 이슈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한편 최 부총리는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젊은이들과 대화의 기회를 갖겠다”고 밝혔다.

채윤경·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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