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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유승민·김한길 의원의 자기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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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지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우리 정치의 공동 목표를 찾는 여·야 국회의원 토론회’가 지난 29일 국회에서 열렸다. [뉴시스]
이지상
정치국제부문 기자

“인사만 하다가 시간 다 가겠네….”

 29일 국회 귀빈식당에 들어선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농을 던졌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과 새정치연합 김한길 전 대표가 연 합동토론회는 말 그대로 문전약시(門前若市)였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 89명의 국회의원들이 참석했다. 본회의를 열 수 있는 의사정족수(재적의원의 5분의 1)보다도 많았다.

 하지만 풍성한 건 참석자들뿐만이 아니었다. 토론회에서 두 의원이 쏟아낸 한국 정치에 대한 진단과 해법은 더 풍성했다. 토론회 주제부터가 ‘오늘, 대한민국의 내일을 생각한다’였다. 유 의원은 토론회 서두에 “여야가 협력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보자는 김 전 대표의 제안에 동의했다”며 “여야가 보수·진보 진영의 포로가 되지 않고 국민의 통증을 함께 느끼며 먼 장래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영의 포로가 되지 말자”는 발언을 신호탄으로 두 의원은 각자 몸담고 있는 ‘친정’을 향해 뼈아픈 자성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유 의원은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증세 없는 복지’를 비판했다. 그는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 지금 저(低)부담·저복지인 상황에서 고(高)부담·고복지로 가는 것은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재정도 없다”며 “가진 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원칙하에 중(中)부담·중복지로 단계적 증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랄한 진단이었다.

 김 전 대표도 지지 않았다. 김 전 대표는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타성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여당이 하면 무조건 독선이라고 몰아세우는 정쟁의 굴레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눈 감고 들으면 독설가 여당 의원이 떠오를 만큼 김 전 대표의 ‘내 당’ 비판은 아팠다.

 3선인 유 의원은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부터 당의 브레인으로서 이회창·박근혜 후보의 대선운동을 도왔다. 4선인 김 전 대표 역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참모로 정치 경력을 키웠다. 그런 두 사람인 만큼 솔직한 자기 비판의 힘은 컸다.

 돌아보면 올해 정치는 어느 때보다 진영 싸움이 치열했다.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이었다. 정치가 그럴수록 지지자들도 극성스러워졌다. ‘노빠’들을 비판하며 등장한 ‘일베’는 한국 정치에 38선보다 더 넘기 힘든 금을 그었다.

 문제는 진영싸움의 그늘에서 보수도 진보도 아닌 보통사람들의 삶이 부산물처럼 취급됐다는 점이다. 비정규직법이 그랬고, 경제살리기법이 그랬다. 유·김 두 의원의 토론회는 그래서 신선했다. 정치가 타협이라는 중간지대를 넓혀 나갈 때 보통사람들의 삶이 소중하게 다뤄지는 법이다. 2015년 을미년 정치는 두 의원의 토론회가 모델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하다.

이지상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