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너 아니어도 수컷은 많거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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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다리 끝을 물속에 담가 올챙이 등을 낚아 먹고 사는 낚시거미(사진)는 암컷이 수컷을 즐겨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 교미 후 알을 밴 암컷이 영양보충을 위해 수컷을 잡아먹는 경우는 종종 있으나 낚시거미 암컷은 이와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암컷은 도대체 자신의 파트너와 먹잇감을 어떻게 구분할까. 또 자칫 수컷을 모조리 먹어버려 종족번식의 위기를 맞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진 않을까. 이와 관련해 캐나다 토론토대의 채드윅 존슨 교수 연구팀이 재미있는 실험을 해 봤다.

먼저 두 채집장을 준비한 뒤 한 곳엔 암컷 낚시거미들만 넣고 다른 곳엔 암컷과 수컷을 함께 넣어 새끼떼부터 키웠다. 거미들이 교미를 할 만한 성체가 됐을 때 두 채집장 모두에 수컷을 넣어 봤다. 그 결과 첫번째 채집장에서 자란 암컷들은 대부분 교미에 들어갔으나 두번째 채집장에선 처절한 살육이 벌어졌다. 거의 모든 수컷을 잡아먹은 것이다. 존슨 교수는 이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거미류의 본능적 방어 능력'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수컷과 함께 살아 온 암컷은 수컷 한두 마리를 잡아먹어도 세상에 수컷은 충분히 많다는 내부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쉽게 포식자가 된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 결과는 행동연구생물학(Behavioral Ecology)지 최근호에 소개됐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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