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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제포럼: 우리경제 현실인식과 정책 방향

부총리 "경기 확장적 정책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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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중앙일보 월례 경제포럼은 13일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연사로 초청해 '우리 경제에 대한 현실 인식과 경제정책 방향'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이날 한 부총리는 "하반기부터 경제가 점차 회복 국면에 접어들고 있지만 낙관하기엔 이르다"면서 "성장잠재력 확충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토론 참석자들은 "과잉 개혁에 따른 불확실성과 정책의 비일관성도 경제위축의 요인이었다"이라며 "부총리가 리더십을 갖고 일관된 경제 정책을 펴달라"고 주문했다.

▶ 중앙일보 월례 경제포럼은 13일 한덕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초청, 토론회를 열었다.[변선구 기자]

월례 경제포럼 참석자(가나다순)

사회:김정수(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노성태(한국경제연구원장)
박우규(SK경영경제연구소장)
박진도(충남대 교수)
안종범(성균관대 교수)
유종일(한국개발연구원 교수)
이 근(서울대 교수)
이장규(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
지동현(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정표(건국대 교수)

▶사회(김정수)=부총리는 "경기 회복세가 확실해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금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경기를 포함해 부동산 대책의 효과가 어떨 것으로 보는가.

▶최정표=한국은행 총재는 금리를 올릴 뜻을 밝힌 것 같은데, 부총리는 저금리 의지를 고수할 것인지. 경기회복 조짐이 있는데 금리를 올려 찬물을 끼얹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저금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직은 돈을 빌려주는 사람보다 빌리는 사람 위주로 정책이 가야 한다.

▶이장규=정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금리 정책이다. 여건 변화가 있을 때마다 올리고 내렸으면 문제가 안 될 텐데 그동안 그러지 않았다. 저금리는 투자에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금리인데도 기업투자는 안 되고 있다. 그렇다면 금리와 기업투자의 상관관계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

▶이근=우리나라는 금리와 환율을 인위적으로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을 하려는 정책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지금처럼 이자율이 낮아도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정책을 붙들고 있는 근거를 모르겠다. 금리를 올릴 때가 됐다고 본다.

▶부총리=문제의 핵심은 경기회복을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보느냐다. 내년 경제도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디플레 갭이 여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리결정의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은 물가다. 현재 근원(코어) 인플레이션율은 2% 정도로 한국은행의 물가 타깃(2.5~3.5%)보다 낮다. 이처럼 물가는 안정돼 있고 경제 회복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경기확장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시중의 유동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과다 유동성이 부동산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므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 문제를 금리로 해결하려면 안 된다. 시장의 수급조절 같은 미시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최근 제주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재무장관회의 때 다른 나라 장관들과도 부동산 문제를 논의했는데 금리 같은 거시정책 수단 대신 수요.공급 등 미시정책을 써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이장규=부동산 문제에 대해 21개국 재무장관들이 합의했다는데 이해하기 어렵다. 나라마다 부동산 문제가 다를 텐데 어떻게 정책에 대해 합의를 할 수 있는가. 시중에 유동성이 많은 것이 부동산 투자와 관계없다고 결론 내리기도 어렵다. 최근의 부동산정책을 보면 징벌 성격의 과세를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경기부양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스스로 개혁이라는 굴레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닌가.

▶박진도=최근 집을 두 채 더 사서 3주택 보유가 된 사람을 만났는데 "왜 샀느냐"고 물으니까 이자 부담이 없어서 샀다고 하더라. 현재 경기가 침체 상태에 있는 것은 지난 정부 때 만들어진 거품 때문이다. 지금은 주가에 거품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부총리=21개국 재무장관들이 "부동산 붐에 대해 금리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의견을 모은 것은 부동산 가격 상승이 여러 요인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거시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금리에 손을 대면 딴 데 미치는 영향도 크다. 얼마나 올려야 하는지도 불확실하다. 따라서 경제적 비용이 너무 크다고 본다.

금리를 왜 올려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도 있어야 한다.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니까 올리겠다는 것은 답이 아니다. 이번 부동산정책은 단기적으로 경기에 마이너스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전체 건설경기의 수준으로 봤을 때 경기회복을 어렵게 만들 수준은 아니다.

▶노성태=내년에도 디플레 갭이 있을 것으로 본다. 실제 성장이 잠재성장률에 못 미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4~5% 수준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8~9% 성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지난해에도 소비만 뒷받침됐으면 7~8% 성장도 가능했다. 그런데도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 것은 정부 정책이 일관성 없고 불확실성을 크게 해 경제주체들을 불안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돼 분위기가 잡히면 높은 성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사회=성장잠재력 감소나 약화 추세를 반전시킬 방법은 없을까. 또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박진도=경기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경기 회복을 못 느낀다. 소비가 살아나고 있다고 하지만 그건 고급 소비의 경우이고 일반 소비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 설비 투자도 대기업만 하지 중소기업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기를 평균적인 것으로 보지 말고 부문별 차이를 눈여겨봐야 한다. 고용이 늘어나는 것도 어떤 수준의 고용이 늘어나는지, 고용의 질을 봐야 한다.

▶부총리=양극화 문제는 정부도 심각하다고 본다. 양극화는 기본적으로 외환위기 후에 추진된 구조조정과 직결돼 있다. 경기가 회복되면서 산업과 기업 등에서 미시적인 구조조정이 같이 일어나야 양극화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경제위기 이후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이 더 구조조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이 더 확실하게 일어나지 않으면 투자가 살아나기 힘들 것으로 본다. 소득 격차 문제는 경기 회복과 고용 증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고소득층에서 빼앗아 저소득층에 재분배하는 정책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안종범=정부의 말과 실제 정책이 다른 것 아닌가. 지난 3~4년 동안 매년 재정을 조기 집행하고 하반기엔 추경 예산을 짰다. 추경을 염두에 두고 예산을 편성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조기 집행은 단기 부양이고, 추경 편성은 경제 수장이 정치에 굴복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려면 투자성 지출을 늘려야 한다. 소비성 지출이 10%포인트 높아졌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재정의 경기부양 효과는 없어진다. 게다가 고령화 때문에 이 같은 지출은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지동현=과거처럼 자본과 노동을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생산성을 제고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도 생각해봄 직하다. 즉 일하는 사람의 인센티브 체계를 바꿔줘야 한다.

▶사회=그러나 우리는 자본과 노동 투입을 늘려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여지가 아직 많다고 본다. 투자를 늘리는 핵심 정책수단은 규제 완화다. 노동 투입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들보다 여성의 노동참여율이 낮다. 보육시설 확충과 고령근로 유도 등을 통해 노동 투입을 늘림으로써 성장잠재력을 높일 여지가 많다.

▶이장규=성장잠재력을 높이려면 정부의 개혁을 재조정해야 한다. 이데올로기적 개혁은 앞서가는데 정작 기업투자에 필요한 개혁은 뒤로 간다. 서비스 산업 등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지만, 제조업을 조기 포기해선 안 된다. 중국이 인도보다 나은 것은 기본적인 제조업 흡수력이 있기 때문이다.

▶박진도=많은 사람이 왜 성장을 해야 하느냐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성장도 좋고 잠재력 제고도 좋지만 양극화 문제부터 해소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는 것 같다. 개혁을 많이 했다고 하지만 제대로 개혁이 안 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사회보장 지출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또 노동계를 참여시켜서 같이 가야 성장과 분배가 제대로 되는데 노동을 배제시키고 있지 않는가. 지역 및 농촌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유종일=교육 문제를 빼놓고 성장잠재력을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선 주입식 교육이 여전하고, 그 병폐도 심각하다. 평가 방식을 바꾸는 일이 시급한 것 같다. 성장과 양극화는 대립되기도 하지만 보완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령 양극화가 심화하면 소비는 침체된다. 사회 안전망 구축은 양극화 해소를 통해 성장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양극화 문제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성장잠재력 제고에 도움이 된다.

▶부총리=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여건 속에서 경제가 운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모든 부문이 좀 더 유연성과 탄력성을 갖춰야 한다. 양극화로 인한 보호장치가 있어야 하지만 유연성을 빼앗아 경제 자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수준이 돼서는 안 된다. 양자를 잘 조화시켜야 한다. 경제도 성장하고 (경쟁)탈락자의 보호장치도 갖춰야만 경제 프레임을 지속할 수 있다고 본다.

▶박우규=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를 보면 왜 소비가 늘지 않는가에 대한 답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국민이 벌어들이는 것은 줄어드는데 세금과 사회보장세 등 부담금은 오히려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투자가 안 되는 것은 결국 우리나라가 비용 면에서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근=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따로 생각해선 안 된다. 잘되는 중소기업은 대부분 대기업과 연관돼 있다. 중소기업의 절반은 대기업의 하청기업들이다. 대기업의 잠재력을 깎아내리면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죽인다는 얘기다.

▶부총리=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성을 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교육은 성장잠재력 확충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핵심적 요소다. 규제 개혁은 생산성을 올릴 뿐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투입을 늘려 잠재성장력을 높일 수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정리=임봉수.김원배 기자 <bongsoo@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