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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5. 불꽃을 따라서 <24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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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밤새도록 야간열차를 타고 한낮이 되어 버린 영주역에서 내려 점심을 먹고 기다리다가 안동행을 탈 작정이었다. 셋이서 함께 국밥에 반주로 소주 두어 병 나누어 마시고 일어났는데 고은이 없어졌다. 이문구와 나는 그가 답답해서 어디 어슬렁거리며 산책이라도 갔겠거니 하고는 대합실에 돌아가 의자에 발 뻗고 잠깐 눈을 붙였는데 기차 시간이 다 되어 갈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이문구와 나는 그를 찾으려고 역 앞의 여인숙이며 주점이며 다닥다닥 붙은 잡다한 골목을 뒤지고 다녔는데, 저만치 겨우 소방도로나 될 만한 길가에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는게 보였다. 동네 꼬마들부터 시작해서 술집, 여인숙 아가씨들이며, 가게 주인에, 동네 아줌마들까지 모두 깔깔대며 웃고들 있다. 그쪽으로 달려가 보니 역시나 우리의 시인이 거기 있었다. 그는 언젠가의 조태일처럼 남의 집 담 안의 장독대 위에 올라서서 한참을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 같은 소리로 연설 중이었다.

- 쌈빠라비나 술먹자노 오쏠레미오 니기미깐따라….

나중에 그가 흰소리 겸하여 이태리 남부 시골 사투리였다고 하지만 그 끝에 그가 한숨 섞어 질러대던 소리는 아아, 적막강산이구나! 하던 소리였다. 막막하다든가, 갈 데 없다든가 하던 소리 끝에는 언젠가 전라도 광주 시절에 '민중문화연구소' 개소식 강연에 백기완과 함께 와서는 무등산 언저리에서 지르던 다른 소리도 있었다. 박석무 김남주 이강 등이 모두 백수일 적의 일인데 강연 끝난 이튿날 무등산에서 닭죽으로 속풀이하고 내려오다 버스를 탔다. 마침 행락철이라 무등산 유원지에서 내려오는 청춘 남녀와 가족들이 버스 가득히 탔는데 갑자기 고은이 예의 이태리 남부 사투리를 한 차례 하고 나서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는 가운데 외쳤다.

- 여러분 오늘 술 먹고 잘 놀고 집에 가서 발 뻗고 자겠지만, 민주주의하고 통일해야 삽니다. 남북으로 찢어져서는 어디 가서 사람 대접두 못 받구 삽니다.

갑자기 버스 안이 뒤숭숭하다가 조용해졌다. 영주역 앞에서의 그의 알아들을 수 없던 주문 같은 절규는 어디 호소할 데 없는 저 크나큰 답답증이었으리라. 나는 그 무렵에 한남철이나 서울대 주변 지식인들의 그에 대한 끊임없는 폄하가 일단 일리가 있었다고 보았다. 바로 고은은 아리송한 사십대 이전의 삶과 시에 대하여 스스로 선을 긋고 몸을 돌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누구에게나 지체가 길수록 급해지는 때가 있다. 나중에 다시 여러 가지 추억 속에서 그가 등장하겠지만, 칠십년대의 그는 어리고 순수한 전사였다. 그는 화곡동에 집이 있었지만 그건 살림하는 장소가 아니라 무숙자(無宿者) 고은의 수도 터였다. 나는 독신의 떠돌이였던 그가 그립다. 그의 집에서 이방 저방에 쓰러져 자던 해직 기자들이며, 감옥에서 갓 나온 빵잽이 젊은 것들이며, 그와 둘이서 사람 만나고 강연 다니다 돌아와 팬츠 바람에 쭈그리고 앉아 찬밥 넣고 끓인 아욱죽을 후후 불어가며 먹던 생각이 난다. 그러면서 그는 새벽부터 농부가 밭 매러 다니듯이 부지런하게 사람을 찾아다녔다.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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