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총리」전경련 회장 이번엔 누가 될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총회 시즌이다. 12월 말 결산 법인의 정기 주총이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각 경제단체들도 매년 이맘때면 새해사업 계획을 승인하는 정기총회를 갖는다. 총회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인사에 모아진다. 총화를 치르는 쪽에서나 지켜보는 쪽에서나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사업계의, 미리 정해지다시피 하는 배당율보다는 누가 물러나고, 누가 새로 등장하는가에 더 큰 관심들을 갖는다. 올해 재계의 「총회인사」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것이 오는 23일로 다가온 전경련 총회에서의「]재계총리」선임-.
총리에 비유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전경련 회장을 새로 선출하는 총회인 만큼, 또한 다른 경제단체들 과는 달리「관의 뜻」보다는 재계 스스로의 뜻이 더 크게 작용하는 총회인 만큼 지난해 말부터 새 회장에 대한 하마평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재계는 물론 일반의 관심을 끌어왔었다.
전경련 회장은 엄밀히 말해서「선출」된다기 보다는「추대」된다고 하는 쪽이 옳다.
총회가 다가오면 역대전경련 회장·고문 등을 중심으로 한 원로들 사이에 이번에는 아무래도 누가 회장 일을 맡아주어야 하겠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오가고 이렇게 조정된 원로들의 뜻이 총회 직전에 관례적으로 열리는 회장단 회의에서. 여러 사람의 입을 빌어 거론되며 형식적인 의결기관인 총회에서는 항상 만장일치로 세 회장을「선출」만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재계의 엄격한 서열에 따라 그때 그때의 상황과 분위기가 자연스레 새 회장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이번엔 내가 한번 회장을 하겠다고 나설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새 회장으로 추대되는 당사자는 매번 회장직을 굳이 마다하다가 마지막 단계에 가서 마지못해 회장직을 수락하게 되는 것도 전경련에서만 볼 수 있는 일종의 관례다.
이를테면 전경련 회장의 선출과정은「추대」와 「고사」의 조정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뜻에서 보면 올해 전경련 회장 선출을 지금까지의 회장선출과는 달리 총회를 불과 사나흘 앞둔 지금까지도 「고사」만 있지 이렇다할 「추대」는 없는 특이한 경우다.
지난해 말부터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구자경 럭키금성 그룹 회장, 이동찬 코오롱 그룹 회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무성하던 하마평이. 전경련 총회가 다가올수록 수그러들고 대신 정주영 현 회장의 유임설 쪽으로 기우는 것도 이같은 특이한 상황 때문이다.
정주영 회장의 「고사」는 여러번 있었다.
연초 전경련 회장단의 공식기자 회견 자리에서도 장 회장은『지난 81년 때는 전경련 밖에서 다른 인물을 회장으로 내세우려 했기 때문에 일부러 내 자신이 눌려 앉았었지만 지금은 그같은 분위기가 전혀 없기 때문에 올해야말로 내가 회장직을 물러나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길인 것으로 생각된다』고 분명히 밝혔고 이후 전경련 사무국에 대해서는『앞으로 총회 때까지 일체 회장이야기가 거론되지 않도록 하라』고 강력히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정 회장은 의장단 간친회 등 원로들과 자연스레 후임회장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의가 여러번 있었지만 한번도 후임 회장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한다.
정 회장 스스로가 후임회장 문제를 꺼내지 않는 한 이 문재를 거론할 만한 사람은 재계를 통틀어 몇 사람되지 않는다.
정 회장의 「진의」가 곧이곧대로 회장직 사퇴에 있었다면 벌써 어떤 형태로든 후임회장문제가 거론됐어야 한다는게 재계의 분석이다.
오히려 정 회장은 최근까지도 월례업무 보고회, 자문위원 초청 간담회, 이사회 등 중요한 회의들을 주재, 한해의 전경련 사업계획을 보고 받고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는 등 체육회장 등의 새로운 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전경련 일에 변함없는 애착과 열의를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후임 회장에 대한 원로들의 움직임이 전혀 없자 정 회장의 유임성을 뒷받침이나 하듯 그간 가장 주된 하마평의 대상이 돼왔던 구자경 럭키금성 회장과 조중훈 한진 회장은 지난 1월 중순 일찌감치(?)『회장에 나실 생각이 전혀 없다』는 자신들의「진의」를 표명했다.
구 회장과 조 회장의「진의표명」은 대조적이다.
구 회장은 그룹의 측근임원을 통해 그룹 홍보관계자들에게『나는 아직 회장에 나설 때가 아니다』고 밝힌 반면 조 회장은 이사급 비서실장을 직접 전경련으로 보내 자신의 뜻을 전했고 며칠 뒤 노인환 전경련 부회장은 다시 조중훈 회장을 직접 찾아가 다시 한번 조 회장의 진의를 타진했다 한다.
이 자리에서 조 회장은『한 2년 뒤면 모를까 이번만은 내가 회장 할 생각이 없다』정 회장이 다시 한번 회장을 맡는 것이 좋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실질적인「조정」은 이미 이루어진 셈이다.
또 재계의 일반적인 분석도 정 회장 같은 거물급 후임 회장을 추대하자니 사람이 없고 「젊은 회장」을 새로 추대하자니 아직은 창업 1세들이 많은 우리 나라 재계의 구심점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평이 나오고 있다.
정 회장은 올림픽을 앞둔 대한체육회 회장이란 막중한 자리를 맡고 있는데다 방대한 현대그룹의 일도 챙겨야 하니 전경련 회장을 더하는 것이 아무래도 무리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나 뚜렷한 후임이 없고 본인도『절대로 못하겠다』는 입장은 아니어서 자연히 유임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정 회장은 17일 일본 조선업계 시찰을 위해 출국, 현재 일본에 있으며 20일 저녁 귀국할 예정이다.<김수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