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로 푼 코오롱 10년 노사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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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오른쪽)이 코오롱인더스트리 정리해고자 대표인 최일배씨와 26일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서 악수하고 있다. 이곳에선 고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의 49재가 열렸다. [사진 코오롱]

지난달 8일 별세한 고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은 노사가 한마음일 때 기업이 도약한다는 ‘노사불이(勞使不二)’를 중시한 경영자였다. 14년간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을 하며 노사 관계 안정에 힘을 쏟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도 풀지 못한 노사 갈등의 숙제가 있었다. 10년째 지속한 코오롱인더스트리와 정리 해고자 간 반목이었다. 꼬여만 가던 매듭이 이 명예회장의 49재(26일)를 통해 풀렸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정리해고자와 합의를 통해 제3의 기관에 노사안정을 위한 기금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대신 30여 명의 해고자는 코오롱 본사(경기 과천) 앞에서 해온 천막 농성을 중단하기로 했다. 얼마나 많은 기금을 어떤 기관에 낼지는 양측 약속에 따라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기부금은 정리 해고자 지원, 노사 관계 증진 등에 쓰일 예정이다.

 코오롱 그룹 관계자는 “해고와 복직 요구로 쳇바퀴를 돌던 노사간 갈등을 공신력 있는 기관에 대한 기부로 풀어낸 노사 상생의 새로운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합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02년 경영난에 빠졌다. 자구책을 이어가던 중 2005년 2월 구미공장 생산직 78명을 정리해고했다. 해고자들은 사측이 고통 분담을 하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며 반발했다. 2006년엔 구미공장 내 고압 송전탑에 올라가 고공 농성을 하고, 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자택(서울 성북동)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2009년 대법원이 정리해고가 정당했다는 판결을 했지만 갈등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해고자들은 코오롱 본사 앞에선 천막 농성을 이어갔고 불매 운동도 벌였다.

 그러나 이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양측은 닫혔던 대화의 문을 열었다. 이어 정리해고자 대표인 최일배씨가 26일 이 명예회장의 49재가 열린 서울 성북구 길상사를 찾았다. 이웅열 회장은 최씨와 악수하고, 서로 안았다. 길상사의 만남은 사흘 만에 기부 합의로 결실을 맺었다.

 코오롱 측은 “이 회장이 최씨에게 ‘어려운 경영 환경으로 부득이하게 회사를 떠나야 했던 분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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