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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빈자의 부끄러운 물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 5년전에 일본에서는 미플로리다주에서 생산된 오린지를 약간 수입한적이 있었다.
미일무역교섭에서 미국의 수입확대 공격을 받고 일본정부가 마지못해 특별수입완화품목의 하나로 오린지를 수입했던것이다.
처음 한동안 손님을 끌기 위해서 싸게 팔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오랜만에 눈에 띈 오린지를 붙티나듯 사갔다고 한다. 덕택에 오린지는 이내 바닥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언제 또수입해오느냐고 상점을 기읏거렸지만 그렇다고 수입량이 늘어나지는 않았다.
일농림성의 어느 간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린지는 너무 맛이 좋습니다. 그 때문에 수입자유화를 하지못하는 겁니다」
전후일본은 농업근대화의 총아로 밀감밭 조성을 정책적으로 권장했고 그 결과 과잉생산이 되어 주체하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그럴때 국민들이 오린지에 맛을 들이면 자국생산 밀감이 더팔리지않게 될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해외여행자들이 긴급하지도 않은 물품들을 볼품사납게 사들고 들어와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이른바 쇼핑관광의 추태를 보면서, 일본의 오린지와 밀감관계를 연상하지 않을수 없었다.
밀감생산 소비에 지장을 주지않기 위해서 맛이 좋은 오린지를 경계했다는 그 나라에 가서 지각없는 일부여성들이 귀한 외화를 물쓰듯 하며 몰려다녔다는건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런 경우가 어디 여성들 뿐이겠는가.
해외여행이란 아무리 자유화가 되었다해도 누구나 쉽게 갈수있는 길은 아니다. 모처럼의 기회인만큼 어떤 방문목적이나 관광이외에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있고 어떤 사회인가를 보면서 안목을 넓힐수있는 가장 실감있는 경험세계의 확대기회인 것이다.
그처럼 유익할 수 있는 해외여행을 물욕으로 얼룩지게 하는 처사는 아직도 우리가 누리는 생활향상에 따르지못하는 정신적 빈자임을 보게 한다.
굳이 과세대상이나 수입금지품목인 전자제품이나 밍크목도리등 사치품을 무리하게 사오는 속성이라든가, 별것도 아닌 남의 나라 전기밥솥따위를 으레 하나씩 사들고 오는 풍조에 부끄러움과 아픔이 핵을 이룬다.
작년 한햇동안 김포세관을 통과해온 전기밥솥이 하루 평균 40∼60개로 도합 1만5천개가 넘었다고 한다. 그 부피 큰 밥솔꾸러미가 줄을 이어 밀려드는 몰골은 상상만 해도 싫어지는데, 사실상 김포세관원들도 넌더리를 내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뿐이겠는가.
일본세관원들이 속으로 비웃었을걸 생각하면 최근 일본 신문에서 흉본 기사 못지않게 속이 상하다.
해외여행이 어렵던 시절이나 수입전면금지시기에는 외국에 다녀오는 사람들을 어쩔수 없이사로잡는 해외선물의 매력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미국이나 일본백화점에서 그럴듯하게 눈길을 끌던 물품들을 국내백화점에서 얼마든지 볼수 있으며, 그렇게 비교할 기회를 한번이라도 가져본 사람이면 미련없이 산뜻하고도 홀가분한 여행이 가능해질 것으로 믿는다.
또 정식으로 수입된 외제품이외에도 가짜인지도 모를 밀수품에 매달리는 어리석음에서도 과감히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일제 전기밥솥과 국산 전기밥솥의 차이가 어느정도냐 하는 것을 따져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밥이 더 잘되고 맛과 보온시간이 좀더 오래 보장된다는 성능상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국산전기밥솥 생산업체에서는 기술상의 보완과 향상을 적극 도모해야 하겠고 그 정도의 기술이 없지않으리라고 믿는다.
성능보장에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국산품애용만 강조한다는건 경쟁시대를 헤쳐갈 자격이 없기 매문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이번 쇼핑관광 충격파는 일반여성들에게, 나아가서는 일반국민 누구나 사고방식의 재점검 기회로 삼는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관계당국이 집계한 해외여행자 휴대품 반입량에 따른 외화소비는 연간 7천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81년도의 우리나라수출실적가운데 일반수출은 1백82억달러.그 순이익률은 5%에 해당하는 9억1천달러(한화로는 6친3백97억윈) 라고 할때 수출로 애써 벌어들인 외화보다 여행길에 허비하는 외화가 웃도는 현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황금이 열리는 나무를 키우자」-17세기 프랑스에서 중상주의 정치가로「루이」-14세의 번영을 이룩했던「콜베르」의 말이다.
당시 재무총감이던「콜베르」는 외국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나라의 부를 키우는데 있다는 신념아래 수입을 억제하고 자국상품을 대대적으로 외국에 파는 작전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프랑스특유의 견직물· 레이스·담배·향수·유리제품등을 고급화해서 수출하여 세계적 인기품목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은것도그때였다. 그러나 정작 패션의 발원지라는 파리 본고장 사람들은 유행과는 상관없이 소탈한 개성미를 즐기는 멋장이들이다.
지금 세계는 자국보호무역으로 수출길이 날로 어렵게 되고 외자도입조건도 점점 힘들어져가고 있다. 이런때 귀중한 외화를 헛된 욕심으로 낭비하고 다니는 철없는 행위는 제발.그만두자. 오린지는 먹지않아도 살수있으며, 맛있는 밥은 정성만있으면 지을수 있는것이다.
◇약력▲시인▲서울에서 태어남▲1960년 「현대문학」지 시부추천으로 문단데뷔▲현대문학상·월탄문학상 수상▲저서·시집『눈의 나라 시민이 되어』등 4권, 에세이집 『너로 하여우는 가슴이 있다』 . 방송칼럼집「사랑이 그대에게 말할 때』<김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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