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비관 … 이번엔 일가족 자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지나친 기대가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참극을 불렀다. 12일 오전 4시25분쯤 충남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H고등학교 앞 도로에 세워진 쏘나타Ⅱ 승용차에서 불이 나 이모(47)씨와 부인 장모(44)씨, 딸(15) 등 3명이 숨졌다.

경찰은 이 사건을 이씨가 아들(18.고3)의 신병과 성적 부진 등을 비관해 승용차 안에 불을 질러 가족과 함께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경찰에 따르면 아들 이군은 이날 오전 8시쯤 화재 현장에 나타나 "내 문제로 고민하던 아버지가 승용차에 휘발유를 뿌렸고, '살고 싶은 사람은 내려라'고 해 혼자 달아났다"고 울먹였다.

이군이 다니는 H고교는 전국의 상위권 학생들이 입학시험을 통해 선발돼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곳이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이군은 중학교 시절 전교 1~2등을 도맡아 했고, H고등학교에 합격한 뒤 카센터를 운영하는 아버지가 동네 잔치를 벌일 정도로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이 학교에 입학한 뒤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성적도 바닥권으로 떨어졌다. H고교 측은 "이군은 지난해 가을부터 같은 방 학생들을 위협하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군은 경찰에서 "아버지가 '넌 내 인생의 절반이었는데 모든 게 망가졌다. 네 동생과 우리 모두 널 위해 희생하는데 넌 뭘 그렇게 겁내느냐'고 말한 뒤 차 안에 휘발유를 뿌렸다"며 고개를 숙였다.

공주=김방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