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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먹고 알 먹는 사회공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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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셜리 위-추이
한국IBM 사장

매년 연말이면 빠지지 않는 뉴스 중 하나가 성금 기부 소식이다. 지난해 국내 기업 234곳의 사회공헌 지출이 2조8114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언론도 적지 않은 금액을 기부하는 기업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공헌에 대한 개념이 진화를 거듭하며 기업의 사회공헌 양상도 변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금전적 기부는 1회성 기부에서 직원과 회사, 회사와 외부 단체의 매칭그랜트로 발전하고 있다. 기업들은 금전적 기부에서 나아가 재능기부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이것이 지속 가능한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유가치창출(CSV)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또 다른 큰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즉 혁신적 기업들은 비즈니스 과제들을 사회적인 이슈와 연계시켜 기업 차원의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에 기여도 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모색하는 상생 전략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 한 택배회사는 ‘실버 택배’를 채택해 노년층의 구직난과 택배기사 부족을 동시에 해결했다. 기존에 1인이 하던 업무를 4명의 실버 기사가 분담함으로써 업무 강도를 낮춰 고연령 사회에 대비한 모범적인 사례가 됐다. 또 네슬레는 제품 생산 전과정에 탄소배출 저감 프로그램을 전사적으로 도입해 지난해 포춘 선정 세계 50대 존경 받는 기업 ‘컨슈머 푸드 프로덕트’ 부문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렇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실질적인 가치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 폭넓은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한 기업이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뿌리 깊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정부·사회단체뿐 아니라 협력업체, 고객사, 심지어 경쟁사까지도 참여할 수 있도록 생태계(Ecosystem)가 구축되어야 한다. IBM은 중소기업의 대기업 납품 지원을 위해 16개의 기업으로 구성된 ‘공급자 연결망(Supplier Connection)’을 구축해 중소기업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경쟁사들의 참여도 유도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만든 경험이 있다.

 둘째, 금전적 기부를 넘어 기업의 인적·물적·기술 자원을 통한 사회공헌으로 변화해야 한다. 사회적 변화를 이루면서 기업의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려면 금전적인 단순 기부보다는 기업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자원 활용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단순 재원 지원은 기업과 사회 문제를 분리된 상태로 있게 하지만, 재원 지원과 기업 자원을 결합시키면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2013년 뉴욕시는 뉴욕 시립대, IBM과 협업하여 고등학교와 전문대학 과정을 통합한 6년제 전문기술교육과정, 즉 P-TECH 프로그램 만들었다. 졸업시 고교 졸업장은 물론 기술분야 대학 학위도 함께 받을 수 있는 제도다. 교육과 일자리를 직접적으로 연동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오바마 대통령도 직접 방문해 격려할 정도로 미국의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되었다. 브루클린에서 시작된 이 학교는 현재 27개로 늘었으며 조만간 100개로 확대될 예정이다.

 셋째, 기업의 사회적 책임 프로그램은 조직의 리더십 양성에 중요한 수단이 된다. IBM은 ‘글로벌 기업 봉사단(CSC)’이라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발족했다. 전세계 IBM에서 우수 직원만을 선별해 팀을 만들고, 이 팀들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파견국에서 NGO와 함께 1개월간 프로젝트를 해결하며 사회적 이슈를 해결한다. 지금까지 전세계 58개국에서 3000여 명의 IBM 직원들이 참여했으며, 37개국에서 1000여 건의 프로젝트가 진행돼 6년 간 1억 달러의 가치를 창출했다. 이를 통해 전세계 3300만 명이 혜택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질 기부에서 시작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와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재능기부를 거쳐 공유가치창출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기업마다 새해 전략 마련으로 분주한 이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을 기업의 주요 전략 중 하나로 고려해보면 어떨까.

셜리 위-추이 한국IBM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