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장성 복지는 국가가, 스킨십 복지는 지자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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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확대 때문에 시장·군수·구청장들은 중앙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지난달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경북 경주시 힐튼호텔에서 총회를 열고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같은 국가 사무의 재정 부담을 지방에 떠넘겨 지방 재정의 파산을 초래하고 있다”며 “전액 국비로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정부가 지방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복지 정책을 밀어붙인 뒤 지방에 부담을 지운 데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협의회 구정태 수석전문위원은 “최소한 기초연금과 무상보육의 중앙정부 부담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대신 지방소비세율을 5%에서 11%로 높이지 않았느냐”고 반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국가가 맡아야 할 복지와 지역이 맡아야 할 복지를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웨덴이 본보기다. 스웨덴은 노인연금이나 실업급여 같은 사회보장성 연금과 급여는 전부 중앙정부가 책임진다. 또 광역지방자치단체(시·도)는 의료복지, 기초단체(시·군·구)는 교육시설 운영과 장애인 복지를 맡는다. 어린이가 특히 많은 경우처럼 인구 구성 때문에 부담이 큰 지자체는 중앙정부가 추가로 돈을 대준다.

 동의대 박영강(행정학) 교수는 “한국은 노인·장애인·어린이 돌봄 서비스처럼 옆에서 살펴야 하는 ‘스킨십 복지’를 지자체가 맡고 기초연금과 무상보육같이 직접 만나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은 국가가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이 원칙에 따른다면 기초연금·무상보육 등은 100% 국가가 지원하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청주대 손희준(행정학) 교수는 “국가가 지자체에 돈을 줄 때 기초연금에 얼마, 무상보육에 얼마라고 용도를 지정할 게 아니라 그냥 뚝 떼어주고 지자체 스스로 알아서 나눠 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지자체별로 상황에 맞게 재원을 나눠 쓰기 때문에 훨씬 짜임새 있게 복지 시책을 펼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복지 확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보다 소득이 높은 프랑스도 하지 않는 전면 무상급식을 한국은 추진했다는 지적이다. 프랑스는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가정의 학생에 대해서만 무상급식을 하고 나머지는 부모 소득을 등급으로 나눠 등급별로 다르게 급식비를 낸다.

 연세대 김진수(사회복지학) 교수는 “급증한 복지 부담이 일선 시·군·구에 ‘등골 브레이커’가 되고 있다”며 “최악의 경우 증세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단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 몫으로 돌아가는 세금을 늘려 지방 재정을 탄탄히 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명지대 조동근(경제학) 교수는 “현 경제 상황에서 증세는 어려울 것”이라며 “지방 재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복지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혜택 대상을 줄이는 순서로는 ‘무상급식→무상보육→기초연금’을 제안했다. 선진국에도 별로 사례가 없는 무상급식을 제일 먼저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상보육에 대해 조 교수는 “무상보육 지원 때문에 맞벌이가 아닌데도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일이 일어난다”며 “엄마 손에서 커야 할 0~2세 지원은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윤호진(팀장)·장대석·홍권삼·신진호·김윤호·차상은·구혜진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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