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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은 서울에 살 권리도 없나" 특전사·행정학교 등 이사 갈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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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군대가 동네 북이냐."

군이 끓고 있다. 지난달 말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부동산 대책을 논의하면서 특전사와 종합행정학교.상무대.남성대 골프장 등이 몰려 있는 군 시설을 갑작스럽게 수도권 밖으로 내보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성남 서울공항도 단골 이전 대상이다. 군사시설 이전 조치에 현역 장교는 물론 예비역까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정부는 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성남시 접경에 위치한 군사시설과 그린벨트 등 200만 평가량을 강남 신도시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하기 전에 군사시설 소유권자인 국방부와는 사전 협의를 거의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해 한 영관 장교는 "한마디로 기분이 매우 나쁘다"고 말했다. 이 영관 장교는 "도시의 발전에 따라 군 시설이 자연스럽게 외곽으로 이전할 수 있다"며 "그러나 이번처럼 사전 협의도 없는 일방적인 조치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와 여당이 말로만 '국민의 군대'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불필요한 존재로 보는 느낌"이라고 했다.

예비역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재향군인회 윤창로(예비역 육군 준장) 홍보실장은 "(예비역들이)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속은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예비역 장성 등이 자주 이용하는 남성대 골프장이 이전 대상 지역에 끼어 있어 오해를 받을까 봐 말을 자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군 관계자는 "군인과 그 가족은 대도시에 살 권리가 없느냐"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19세기 영국에서도 런던 시내에 있는 1개 연대를 외곽으로 내보내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야당이 반대해 무산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야당은 '장병들이 영국 시민 사회 안에 함께 살면서 영국적인 가치와 문화를 향유할 때 그 중요성을 깨달아 목숨을 바쳐 지킨다'는 것을 이전 반대 명분으로 내세웠다고 한다. 미국 워싱턴 DC에는 국방대학교(NDU)가 있고, 프랑스 파리 시내에는 지휘참모대학 등 상징적인 군사 시설이 있다.

이전 대상 부대 가운데 특전부대는 서울 부근에 주둔해야 하는 이유도 나온다. 특전사와 함께 있는 3공수여단은 서울 시내에서의 테러 대비, 서울공항 경호를 맡고 있다. 유사시에는 북한 지역에 1차로 공중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부대가 공항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사 시설 이전을 군사적인 차원에서 검토하는 주무 부서인 합동참모본부는 아직 이렇다 할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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