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blog] 호나우두가 야구도 잘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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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2-1로 이겼습니다. 브라질은 네덜란드와도 좋은 경기를 펼쳤습니다. 지금 무슨 뚱딴지 같은 월드컵이냐 하시겠지만 정말입니다. 언제, 무슨 월드컵이냐고요? 지금 대회가 진행 중입니다. 바로 네덜란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야구월드컵 얘기입니다.

축구 세계 최강 브라질은 야구에서는 아직 낯선 이름입니다. 36회째를 맞은 세계선수권대회(월드컵) 참가가 이번이 세 번째고, 역대 최고성적이 2003년 7위니까요. 그런데 가만, 7위? 그렇다면 야구도 수준급이라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브라질은 야구 약소국이 아닙니다. 야구 선수가 5000명이나 되고, 특히 청소년 선수들은 세계 4강까지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아니, 축구만 잘하는 줄 알았던 브라질에 언제, 어떻게 야구가 자리 잡았을까요.

브라질 축구가 '삼바 축구'라면 브라질 야구는 '다쿠앙 야구'입니다. 야구의 뿌리가 브라질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게 아니라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거죠. 지금으로부터 97년 전인 1908년, 일본에서 브라질로 대규모 이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상파울루로 건너간 일본인들이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려 지금은 13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들 사이에서 야구가 성행하기 시작했고, 그 야구가 자라나 이제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겁니다.

8일(한국시간) 한국과의 경기에 출전한 브라질 선수들의 '베스트 9'을 보면 일본 성(姓)인 사토가 세 명에다 야마오카, 오노, 마쓰모토 등 일본 성을 쓰는 선수들이 팀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일본계 2~3세 선수들로 브라질 국적에 사고방식도 브라질 사람이지만 생김새는 영락없는 일본사람입니다. 이 가운데 이름이 가장 재미있는 선수가 7번 타자로 나왔던 좌익수 호나우두 오노(Ronaldo Ono)였습니다. 호나우두가 야구도 잘하는 셈이죠. 아니, 쇼트트랙을 한다는 오노가 야구도 하는 건가요?

브라질의 사토 감독에게 "일본계 브라질 사람 가운데 축구로 유명한 선수는 없는가. 축구도 많이 할 텐데"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브라질 사람들은 고무로 된 다리를 갖고 있는데 우리 일본계는 나무로 된 다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축구는 잘 못한다"는 겸손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역시 자신을 낮추는 데 익숙한 일본인의 피가 흐르는 건가요.

로테르담=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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