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로 받은 「기모노」못입는 한·일간의 응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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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번 광화문을 지나다 그곳 거리에서 일장기가 펄럭이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나까소네」일본수상의 공식방문을 환영하는 깃발의 행렬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광경으로서 반갑다기보다 무언가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감정의 응어리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것은 물론 36년간의 악랄한 식민통치가 우리들에게 혐오와 피해망상과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패전의 잿더미 위에서 지금은 세계 유수의 열강으로 부흥되어 아시아 여론의 심장부 역할을 하게된 일본, 그리고 문화의 뿌리와 인종의 동질성을 갖고 있는 한국과 일본이 언제까지나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오래전부터의 생각이었다.
한일여성친선협회는 그런뜻으로 77년 발족을 본 것이다. 모성애를 지닌 설득력있는 여성들의 대화로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응어리를 쉽게 풀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기도 했다.
우리들은 그들을 만나면 많은 이야기를 했다. 65년 국교가 정상화 되었을때 일본인들이 기모노를 입고 조오리를 신고 온 것은 과거의 죄책감과 양심을 생각한 것이라고 지적한 적도 있다.
우리는 또 일본측 상마설향회장과 간부 회원들에게 곧잘 우리의상을 선물했다. 그들도 우리들에게 일본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선물한 적이 있다.
친선협회의 리셉션이 있을때 상마 일본측 의장과 간부들은 우리가 준 한복선물을 가끔 입고 나온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선물로 준 기모노를 입고 나오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한번정도는 자연스럽게 웃고 넘겼지만 두번 세번 제안을 들으며 도저히 그냥 넘기기가 뭣해서 실토를 하고 말았다.
『당신네들은 우리옷을 입어도 거부반응이 있을 수 없지만 내가 만약 기모노를 입는다면 나 자신은 물론, 우리 국민을 배신하는 느낌이 들게 된다. 내가 기모노를 입어도 떳떳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게 하기위해 우리는 지금 이해와 친선을 깊이 하려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바라는 그날이 올때까지 고이 간직해 줄 터이니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그들의 이해도 빨랐다. 한보따리나 되는 그 옷이 양국의 역사와 관계를 증명이나 하듯 지금도 몇년전에 접어진 그대로 꼭꼭 싸여져 있다.
내 생전에 그 옷을 행여나 입어 볼 날이 있을는지. 정말 그것은 아직도 미지수다.
일본과 가까워 지려고 노력하는 나에게마저 이처럼 아직 일장기와 기모노는 심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일본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곳 여성들의 검약정신을 우리가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유한 여성들의 모임에서도 나는 그들의 검약정신을 피부로 느낀다.
바로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국력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상마 일본측 회장이 늘 그들 의원에게 강조하는 말-『입장을 서로 바꾸어보고 이해를 해야한다』는 것도 뜻있는 이야기다. 가까운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가 앞서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우리가 그들을 앞서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그들보다 더 월등할때 과거는 쉽게 묻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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