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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⑧기술진보] 80. 실패로 끝난 IT 독립프로젝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개발에 성공한 중형 컴퓨터인 타이콤의 개발팀이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

“IBM·MS와 어깨 겨룬 자부심에 뿌듯"

“1991년은 ‘정보기술(IT) 독립’을 선언한 해였습니다. 국책 연구프로젝트로 추진된 국산 중형 컴퓨터‘타이콤’과 한국형 PC 운영체제(OS) ‘K-DOS’가 발표됐거든요. IT산업에서 핵심이었던 중형컴퓨터와 PC 운영체제는 그 이전까지 해외에 100% 의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난달 23일 서울 삼성동의 한국RFID(무선바코드)협회에서 만난 현오중 전문위원(옛 한국컴퓨터연구조합 사무국장). 그는 “당시 삼성ㆍ금성 등 참가업체들은 IBM이나 MS와 어깨를 겨룬 자부심에 뿌듯했다”고 회상했다. 과학기술처(현 과학기술부) 산하였던 연구조합은 국책 프로젝트에 참여한 민간기업들을 관리했다.

정부와 민간기업이 기술 자립을 위해 똘똘 뭉쳐 추진했던 타이콤과 K-DOS 사업은 그러나 실패했다. 94년을 끝으로 타이콤은 행정전산용으로, K-DOS는 초등학교 교육용PC로 일부 깔리는 수준에서 생명을 다했다. 그나마 지금은 모두 철거됐다. 미국의 통상 압력에다 IBMㆍMS의 기술혁신을 따라가지 못해 보급단계에서 경쟁력을 잃어서다.

현 위원은 개인자료실로 가더니 먼지가 뽀얗게 쌓인 보고서들에서 두 권의 책을 꺼냈다. 『타이콤 백서』와 『K-DOS설명서』 였다. 그러곤 잉크가 누렇게 번진 전화번호 수첩에서 그때 담당자들의 연락처를 적어 주었다.

기자는 그들을 찾아 조각난 퍼즐들을 맞춰 나갔다. 이들은 두 프로젝트의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IT강국의 기반을 다진 성과를 높게 평가했다.

◇IBM을 겨냥한 타이콤 = 타이콤 프로젝트는 공공기관용 중형 컴퓨터(주전산기)를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삼성전자ㆍ금성사(현 LG전자)ㆍ현대전자(매각)ㆍ대우통신(매각) 등 4대 기업이 공동 개발기관으로 참여했다. 현 위원은 “4개사에서 각각 50명 등 200여 명이 대전의 ETRI로 모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오길록 ETRI 개발사업단장과 김건중 삼성 상무,김진찬 대우 전무 등이 주축이었다.

타이콤은 IBMㆍNEC 등 외국업체들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91년 7월 개발이 끝났다. 박봉기 현등시스템 사장(금성사 이사)은 “그해 말 정부 및 관련업계 고위 인사와 언론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공식 발표행사가 화려하게 열렸다”고 회고했다.타이콤은 94년까지 249대가 행정기관에 깔렸다. 그 과정에서 첨단 기술 확보와 우수 인력 육성이 이뤄졌다. 그린벨의 김 사장은 “그 이전엔 공공기관이 외국에서 컴퓨터를 도입할 때 담당자는 ‘눈뜬 장님’이었다”며 “구입에서 설치, AS까지 손 하나 못 대고 외국업체에 맡겼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타이콤 개발로 300명 이상의 우수 인재가 나왔고, 이후 매년 200명씩 컴퓨터 인력이 배출됐다. 또 외국 전산망 컴퓨터에 문제가 생길 때 웬만한 AS는 타이콤 개발자들이 해결했다.

◇MS-DOS의 대항마 K-DOS = 타이콤이 국가 정보화사업이라면 K-DOS는 국민 정보화프로젝트였다. 현 위원은 “전산망조정위에서 국민에게 값싼 PC를 만들어 보급하는 방안을 연구하다 K-DOS 프로젝트가 나왔다”고 말했다. 당시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국민 보급형 PC’(16비트)를 만들려다 보니 제조원가 비중이 크면서도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이 운영체제였다. 특히 MS는 OS(MS-DOS)를 독점 공급하면서 비싸게 팔았다.

89년 삼성ㆍ금성ㆍ현대ㆍ대우 등 대기업에 중견업체들까지 참여해 개발이 시작됐다. 서울 마포의 한국컴퓨터 사무실에서 9개사 30여 명이 모였다. 당시 한국컴퓨터연구조합 국민PC분과위원장이었던 김태영씨는 “5만 줄의 프로그램 내용을 일일이 분석하고, MS에 제소당하지 않으려고 법적 장치도 마련했다”고 회고했다. 91년 말 한국컴퓨터연구조합은 ‘K-DOS’ 프로그램이 담긴 디스켓과 사용설명서 책자를 내놓았다. 처음엔 국산 PC 운영체제 개발보다 MS-DOS 가격을 떨어뜨리려는 속셈이 더 컸다고 했다.

이원호 기자

◇K-DOS란=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해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던 PC의 두뇌 격인 운영체제 ‘DOS’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한 한국형 DOS. PC가 작동되도록 하는 각종 명령어와 작동 방법을 모아 놓은 소프트웨어다. 1991년 개발 완료했다.

◇타이콤이란=한국이 개발한 첫 중형 컴퓨터. IBM 등 외제 일색이었던 중형 컴퓨터를 국산화하기 위한 첫 시도였다. 1991년 개발해 94년까지 행정전산망용 컴퓨터로 보급한 뒤 그 수명을 다했다. 삼성전자·금성사·현대전자·대우통신이 개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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