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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30도, 남극서 날아다니던 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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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영하 40∼50도를 오르내리는 남극에서 모기가 살 수 있을까. 학술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1985년11월29일 남극에서 한국인이 한 마리를 잡았다.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남극을 탐험했던 이동화(56) 남경엔지니어링토건 대표가 베이스 캠프를 날아다니던 놈을 조심스레 잡은 것이다. 신기하게 여긴 그는 이 모기를 통에 넣어 밀봉한 채 지금까지 보관중이다. 물론 모기는 사망했다.

이대표는 1985년 11월16∼12월9일 한국 첫 남극탐험대원으로 남극을 다녀온 이래 세종기지 건설대원(87년10월∼88년3월), 1차 월동대원(88년3월∼89년2월)으로 남극을 탐험했다. 그 후에도 장보고 기지 토목공사와 활주로 건설 기초조사를 위해 해마다 남극을 오가고 있다.

그는 남극을 갈 때마다 일기를 쓰고 자료를 모은다. 남극 탐험 초기에 수집하고 기록한 자료가 1000여 점이다. 그렇게 50여 대형 상자에 담아 29년간 보관해온 소장품을 국립해양박물관(부산시 영도구)에 이달 안에 기탁하기로 했다. 그동안 16번 이사하면서 필름·양말·숟가락 하나도 버리지 않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신경 써 보관했다. 국립해양박물관 측이 관련자료를 1차 조사했으나 워낙 많아 분류에 시간이 걸릴 정도다.

그 중엔 일기장도 있다. 남극에 첫발을 디딘 순간은 이렇게 기록했다. ‘1985년11월16일 오후 2시33분. 앞으로 더 큰 감격이 있을 수 있을까. 현재까지 살아온 나의 생에서 가장 감명깊은 순간이었다. 한국인으로 남극에 첫발을 디뎠다.’

‘오늘은 남극에서 다른 대원 몰래 머리를 감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개운하다. 역시 사람은 길들여지는 것 같다.’ 85년11월28일 이 대원은 남극 바닷속을 탐사한 뒤 소금기를 씻기 위해 머리를 감으면서 물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다른 대원들에게 미안함을 나타낸 내용이다.

당시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남극개발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내용이었다. 노대통령은 답장을 보내왔다고 한다.

남극에 처음으로 휘날렸던 태극기와 탐험대 깃발도 있다. 깃발은 당시 탐험대가 남극에 꽂아놓은 채 철수하다가 문득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한 이 대원이 배를 타고 30여 분간 되돌아가 가져 온 것이다. 그는 당시 모든 대원들로부터 사인을 받았다. “당시 철수하면서 짐을 줄이기 위해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했다. 물건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자료가 될만한 것만 모두 챙겼다”라고 말했다.

남극의 두꺼운 얼음을 깨고 채취한 식물화석도 20여 점 있다. 남극의 화석은 지구 태초의 비밀을 담고 있는 소중한 자료다. 이 밖에도 1988년 제1차 남극 세종기지 월동대원 방풍 복, 대원들의 옷과 짐에 붙였던 패치(patch),사진 1000여 장 등도 있다.

이 대표가 남극탐험 자료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1911년 남극점 정복을 놓고 경쟁했던 노르웨이 아문센(Roald Amundsen)과 영국의 스콧(Robert Falcon Scott)에 대한 후대 평가를 보고 나서다. 남극점 정복에 성공한 아문센은 자료를 거의 남기지 못했으나 스콧은 남극에서 얻은 수많은 화석과 자료를 남겼다. 스콧은 마지막 일기에 ‘영국 신사답게 죽는다. 우리 죽음은 영국인의 의지와 힘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음을 입증해 줄 것이다’라고 적었다. 스콧이 남긴 많은 탐험자료를 토대로 남극 개발이 활기를 띠면서 비록 남극점을 아문센 보다 한 달 늦게 정복 했지만, 후대의 평가가 달라진 것이다.

해양박물관은 이대표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내년 남극 진출 30주년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대표는 “일본 방송들은 해마다 새해 첫 방송을 남극에서 하면서 전 국민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하자원뿐 아니라 미래자원 확보를 위해 우리도 남극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daed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사진설명
1.1985년 11월16일부터 12월9일까지 한국 첫 남극탐험대 베이스캠프에 휘날렸던 태극기를 이동화 대표가 들어 보이고 있다.
2. 혹한의 남극에서 살던 모기. 이 대표가 85년 11월29일 베이스 캠프를 날아다니던 것을 잡아 밀봉한 통에 보관했다.
3.남극대륙이 새겨진 남극관측탐험기념메달.
4.한국 남극탐험대 기념 스탬프. 남극탐험대의 각종 서류와 우편물에 기념으로 찍던 것이다.
5.이동화 대표가 남극의 두꺼운 얼음을 깨고 채취한 나뭇잎 화석. 줄기가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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