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년 이어 온 비법 미켈란젤로의 혼 자극하던 명품 종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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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호 16면

워터마크가 새겨진 종이

서기 105년 채륜(蔡倫)이 낙양에서 뽕나무를 주재료로 종이를 발명한 후 사마르칸트(751년), 바그다드(794년), 다마스쿠스(9세기)를 걸쳐 유럽에도 종이가 들어왔다. 타고난 상인인 아랍인들은 종이 제작기술을 개선해 더 나은 품질의 종이를 서양에 팔았다.

종이 명가, 이탈리아 파브리아노의 비밀

이 종이제작 기술은 1264년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Marche)주 내륙의 파브리아노(Fabriano)라는 작은 마을에서 뿌리를 내린다. 당시 아랍과 유럽간 무역의 관문이었던 항구도시 앙코나(Ancona)와 근접한 이 도시에서 종이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파브리아노시는 종이관련 역사와 전통을 인정받아 2013년 공예와 민속예술 분야의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됐다.

올해 파브리아노의 종이제작 75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이 중 이탈리아 항구도시 제노바에서 일주일 간 열린 과학 페스티벌의 파브리아노 워크숍에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제지 기술에 혁신 가져온 3가지 발명
종이 역사에서 파브리아노가 중요한 이유는 종이 제작기술에 혁신을 일으킨 세 가지 발명 때문이다. 첫째가 워터마크(Watermark)다. 이탈리아에서 필리그라나(Filigrana·선공예)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젖은 종이를 거르는 그물망에 금속선으로 수를 놓듯 그림이나 글씨를 새겨 그 위에 종이가 얇게 올려지게 해 원하는 부분을 반투명하게 표현하는 기술을 말한다. 13세기 말 망가진 그물망을 구리선으로 고치던 장인이 우연히 발견해냈다. 당시 파브리아노의 제지 공장들은 워터마크 기술을 사용해 종이에 이름·형태·품질 등 다양한 정보를 삽입, 제작자 상표처럼 사용했다. 현대에 들어서 이 기술은 지폐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둘째는 유압식 다중 해머 분쇄기(13세기)다. 펄프의 섬유를 빻기 위해 사용하던 돌절구와 손방아 대신 더 고운 섬유질을 얻게 한 기구였다. 셋째는 펄프섬유끼리 잘 결속되게 하면서 동시에 재료가 잘 분산되도록 동물 젤라틴을 사용한 점이다. 아랍인들은 밀 전분을 사용했는데 쉽게 변질돼 당시 공공 문서에 종이의 사용을 금지할 정도였다. 동물 젤라틴의 사용은 문서 작성을 용이하게 하고 종이의 변질을 막았다.

파브리아노 종이는 르네상스에 1차 절정기를 맞는다. 미켈란젤로도 파브리아노 종이를 애용했다. 신대륙 발견으로 잠시 정체기를 맞지만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즈음인 1782년 피에로 밀리아니(Piero Miliani)가 파브리아노에 ‘밀리아니 종이회사’를 창립한 데 이어 손주 쥬세페 밀리아니가 대규모 공장을 세워 가세를 확장하면서 1851년 런던 세계 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하게 된다. 보안 종이 생산 분야에서 탁월한 명성을 얻은 이 회사는 1931년 10월 국유화됐다가 47년 임시 주주 총회에서 ‘카르티에레 밀라니 파브리아노’로 이름을 변경하고 72년 베로나의 페드리고니 그룹에 합류됐다.

파브리아노 워크숍. 압착기에서 빼낸 종이를 건조시키는 과정이다.

한지와 과정 비슷 … 펄프 뜨는 방식은 달라
오후 2시 종이제작 체험을 예약한 30명의 참가자들이 파브리아노 워크숍이 열리는 과학 페스티벌 부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참가자의 반은 어린이들이었고 어른들의 대부분도 아이들 보호자였다. 앞치마를 두른 종이 장인 산드로 티베리가 간단하게 종이의 역사를 설명한 후 미리 준비해온 하얀 펄프 죽이 담긴 나무통 곁으로 참가자들을 데려갔다.

티베리는 한쪽 면에 그물이 달린 턱 없는 사각형의 발틀을 나무통에 넣고 흔들흔들 섞어 펄프죽이 판에 골고루 얹히도록 했다. 이어 종이부분이 밑으로 가게끔 뒤집어 두꺼운 천 위에 재빨리 얹었다. 한지 제작과정과 비슷했는데, 한지는 가로 세로로 엇갈리게 여러 번 뜨는 반면 여기서는 두껍게 한 번만 걸렀다. 워크숍을 위해 준비한 750주년 기념판을 그 위에 얹고 다시 두꺼운 천을 덮었다. 티베리는 같은 과정을 아이들과 함께 두 번 더 진행한 후 겹겹이 쌓인 종이와 천을 오른편의 수동 압착기로 가져가 펌프질을 하며 물을 빼고 다시 테이블로 가져왔다.

두꺼운 천을 걷어내자 파브리아노 750주년이라고 볼록하게 적힌 촉촉한 종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종이를 만져봤는데 젖었음에도 인성(靭性)이 강해서 그런지 쉽게 찢어지지 않았다. 제작된 종이를 나무걸이에 매달아 건조시키는 작업을 끝으로 워크숍은 마무리됐다.

제노바(이탈리아) 글·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유럽 통신원 sungheegioiell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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