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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문턱 최인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내가 아직 철모르는 청년시절일때 나이든 사람들이 한해가 지날때마다 휘파람과 같은 탄식의 신음소리를 내면서 다음과 같이 중얼거리는 말들을 들었었다.『어린시절은 어머니품에서 지나가고 10대의시절은 영겁결에 지나가고, 20의 시절은 지나라, 제발 빨리지나라하고 투정해도 더디게지나고, 30의 시절은 하루날밤이 바뀌듯 후딱지나더니 40의 시절은 번개처럼 흘러갔다』
그때는 귓전에 흘려버렸던 바람같은 말들이었다. 그런데 지나고보니 그말이 맞아 새해로 서른아홉, 30의 나이때 나는 아들을 낳았으며,『별들의 고향』을 출간했으며, 새파랗게 젊은 나이로 운 좋게 세계일주를 했었다.
신문기사를 스크랩해놓은 앨범 속에는 「1974년은 ○○○의해」란 기사가 붙여져 있고, 퇴색된 사진속에서 나는 흰 이빨을 드러내고 자신만만하게 웃고있었다. 그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흘러갔다.
올해로 우리나라사람들이 싫어하는 아홉수의 서른아홉. 이른바, 40대의 문턱에 이미 한발을 걸치고있는 꼬락서니다. 젊음·청년·신예·참신·발랄따위의 감각적인 형용사는 불이려야 붙여볼 수 없는 중년의 낡은 소설가.
10년 동안에 30권의 책을 내었고 최근에는『적도의꽃』이란 31권째의 책을 내었으면서도 지난일을 돌이켜보면 과연 내가 무엇을 했던가 씁쓸한 낭패감뿐이다. 용기도 없었으며, 눈치만 보면서 참 적당히 용케도 살아왔다.
거짓말만하고, 남을 비웃고 비난하며, 내 자신만 우월하다 스스로를 높이면서 험담하고, 모함하며, 아슬아슬하게 참으로 곡예를 하듯이 살아왔구나. 참으로 교활하기 짝이없는 사기꾼인 자네여! 거울속의 네얼굴을 보라. 눈은 뱀처럼 사악하고 네 입술은 독기에 가득차서 악마의 혀처럼 날름거린다. 책팔아 집도 마련하고, 원고써서 아쉬움 모르고 술도 마시고, 노름도하고 그러다가 신경쇠약도 한1년 혼쭐나게 앓았었던가.
작은키 높여보려고 5cm정도의 높은 굽달린 장화를 신고 다녀도 너는 키 작은 땅꼬마며, 넥타이 매고 머리 얌전히 빗고 다녀도 너는 아직 덜 세련된 속물이다.
한편의 단편소설을 공들여 써본적이 있었느냐..
한줄의 문장을 깎고 다듬어 혼신의 힘을 다해 써 본적이 있었더냐.
부끄러워라. 참으로 부끄려워라. 그래도 30초반에는 밤2시에 잠이 문득깨면 지난낮이 다부끄럽고, 지난낮에 험담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그래서 속죄하기도 했었거늘 이제 너는 밤중에 잠이깨면 배고파 라면이나 끓여먹는 밤참귀신이 되었구나. 돼지가 되는구나. 좋은게 좋은거지뭐. 내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것뿐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얼켜진들 어떠하리.
그러고도 새끼들 걱정뿐이 아니더냐. 명색이 작가란 놈아 아아, 명색이 소설가란 녀석이..
천지신명은 보살필지어다.
다가오는 1983년, 내나이 서른의 마지막 한해에는 고통이 가중되어 나를 짓눌어 주시기를. 무엇보다 강렬한 정열로 나를 자를 자폭시켜 쓰고 또 쓰는 걸신이 들게해 주시기를. 만들어 쓰지않고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작품, 주위눈치 보지않고 내가 하고싶은말 그대로 나오는 작품, 그러한 작품을 쓸수있는 한해가 되어주기를…. 무엇보다 좀 더고독해질것. 무엇보다 말을아낄것.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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