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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각-실명제-금리인하-세제개혁-은행 민영화 등|"사채강풍"이 휩쓴「경제의 해」|충격적 사건·조치의 홍수…「82년 경제계」를 돌아본다(경제부 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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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올해는 단연「경제의 해」라 할 수 있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조치가 많았고 어느 해 보다도 경제적 이슈가 크게 부각되었던 한해였습니다.
우선 신정 연휴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단행됐던 개각부터가「경제 개각」이었었지요?
-그렇지요. 1·3 개각 때 바뀐 총리 이하 5개 부처 장관 중 부총리·재무·동자·건설 등 4개 부처가 경제부처여서「실물 경제 팀 등장」이란 말이 나왔었고 이어 5·21 개각 때는 농수산·상공장관이, 6·24 개각 때는 다시 재무·동자부장관이 바뀌었습니다.
1·3 개각은 새해를 맞아 비장한 각오로 불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단행됐던 것이었다면 나머지 5월과 6월의 두 번 개각은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이·장 사건이라는 대형 경제파동의 여파가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개혁지향 낌새 연초부터>
-그렇게 보면 개각도 개각이지만 올해 경제를 통틀어 볼 때 82년은 역시 이·장 사건에서 시작하여 이·장 사건으로 저물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82년 최대의 쟁점이었던 실명제를 비롯해서 금리 인하, 세제 개혁, 은행 민영화, 통화 증발, 심지어 부동산투기까지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이·장 사건에 직접·간접으로 영향받았지요.
-부분적인 경제개각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연초 부임 후 지금껏 경제수반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 부총리의 정책 스타일은 어떠했다고 봅니까.
-전임 신병현 부총리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 부총리가 워낙 소신이 강해 곧게만 가는 스타일이었다면 김 부총리는 유연성이 있다할까 매우 탄력적인 스타일입니다. 상황에 따라 기민하게 잘 대처하지요. 실명제가 당초보다 후퇴하는데도 김 부총리의 역할이 컸다는 소문입니다.
-어차피 충격만 주고 좌초하고만 실명제 실시를 처음부터 왜 완강하게 저지하지 못했느냐는 책임추궁을 면할 수 없게 됐지요. 그러나 늦게나마 나서서 충격을 수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공으로 돌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업계에서도 한해를 지내놓고 보니 경제각료중 부총리가 그래도 가장 이야기 할 만한 장관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김 부총리가 그 만큼 다른 경제부처 장관들보다 연륜으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세상을 잘 안다는 뜻이겠지요.
-바꾸어 말하면 다른 경제장관들이 패기와 소신에 차있다는 의미도 되지요.
-경제정책은 올 3, 4월까지만 해도 경기회복이 뜻대로 안되어서 그렇지 비교적 조용한 가운데 일관성을 유지해 왔는데 5월의 이·장 사건이 터지면서 일시에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어요.
-우선 정부 자신이 당황했고 애당초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너무 가볍게 봤던 것이 더 많은 충격을 준 첫 번째 요인이었습니다.
심각성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고 결국 급히 서두르다보니 강경일변 도의 각종조치·정책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습니까.
-좁은 면에서 본다면 이참에 근본적인 개혁을 해내자는 것이었으나 하나같이 뜨겁고 충격적인 것들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그 좋은(?)정책들의 설득력이 반감되고 말았던 게 아닙니까.
-어쨌든 장 여인 사건이 경제개혁 주도세력들에게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개혁 지향적인 낌새는 연초부터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의 고위층을 싹 맞바꿔버린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개혁의 첫 번 째 대상으로 꼽힌 것이 금융제도인데 종래의 보수적인 재무부 사람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고 결국 평소에 자율화·민영화를 주장해 온 기획원의 자유주의자(?)들을 대거 진주시킨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만약 재무부 진용들이 달랐다면 6·28이나 7·3 실명제도 좀 다르게 나왔겠지요.
-경제개혁파의 득세였군요.
-그러나 정책을 조화롭게 꾸려 나간다는 면에서는 이 같은 과감한 인사정책 때문에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따로따로 노는 바람에 정책수행과정에서 손발이 제대로 맞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충격 조치의 홍수 속에서 일부 경제부처 관료들조차 자기 방어적인 소극적 입장으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생겼고 중앙은행인 한은과 같은 경우 7·3조치 이후부터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완전히 뒷전으로 물러앉아 첨병이 안 된 것만도 다행이라는 셈이 됐습니다.
-뒤에 나온 이야기지만 6·23, 6·28, 7·3등 잇달아 나온 조치들이 성안되고 발표되고 사는 과정에서 핵심부처가 소외되는가 하면 발표되고 나서도 대화와 설득으로 켄센서스를 이룩하려는 노력이 매우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많은 조치들이 결국엔 나웅배 재무가 만들어놓고 나간 6·23조처로 되돌아가 버린 느낌입니다. 결국 실명제도 이자에 대한 차등과세로 압축되었지요.
여기서 다시 정책의 일관성 문제가 나오는데 지난 78년 이후 그래도 일관성 있게 끌고 오던 경제정책이 금년 하반기 이후 다소 흔들린 느낌입니다.
물가가 안정됐다하나 아주 마음놓을 것도 아닌데 돈을 너무 푼다 든가(통화 증가율 60%선), 물가안정을 강조하면서 적자예산(금년 3천5백억·내년 3천4백67억)을 편성한다 든가, 자금의 가수요가 왕성한데 금리를 너무 낮게 끌고 간다든가 하는 것 등이 그 예지요,
-그만큼 정책 당국의 딜레머도 컸겠지요. 어찌 보면 정책의 일관성을 잃게된 것도 장 여인사건으로 인한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거 장 여인 이름이 너무 많이 등장하니 앞으로는 사채파동이란 말을 쓰기로 하지요(웃음) .
-돌이켜보면 올해엔 안 일어나도 될 수 있었던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반기 들어 정책 흔들려>
사채 파동 만해도 그토록 최악의 사태에 이르기 전에 어느 정도 수습할 수 있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대로 곪겨 터뜨렸을 때 결과가 그만큼이나 어마어마해지리라고는 검찰도, 재무부도, 은행들도 미처 상상을 못했던 거지요.
외미 도입사건은 또 어떻습니까. 조달청장의 「언론 조달」발언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쌀 파동이 그때 그토록 커졌어야 하는가하는 생각입니다.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서 근본적으로 대처할 생각보다는「나는 깨끗하다. 나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나간 것이 오히려 일의 수습을 더 어렵게 만든 셈이었지요.
-정책의 일관성 문제와 관련해서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부동산투기 문제입니다.
정부의 정책은 상반기엔 지나치게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투기에 불이 붙으니까 뒤늦게 철퇴를 가하지 않았습니까.
-그나마도 매스컴에서 먼저 부동산 투기를 여론화 시켰기에 마지못해 투기억제책이 나왔었지요.
-당국의 생각으로는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더군요. 부동산 투기가 문제가 되고 나니 건설부의 한 관계자는『매스컴이 조용했으면 투기도 일지 않았을 터인데 공연히 문제를 삼아 투기가 일어났다』고 덮어씌우는 촌극을 빚기도 했었습니다.
-재무부·건설부 못지 않게 올해 힘들어했던 부처가 상공부였습니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수출 등이 안 좋아져 수출목표를 계속 낮춰 가는 등 고심을 많이 했지요.
특히 다우 케미컬 철수를 둘러싼 국제사회에서의 대한 투자에 대한 불신감 문제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고 수출이 전년 대비 2.4%밖에 늘지 않았다는 것은 처음 있는 저조한 실적입니다.
-정책과 현실의 틈새에 끼어 가장 고통을 받았던 곳은 뭐니뭐니해도 은행이었습니다. 어느 시중은행장은 올해가「단군이래 최악의 해」라고 표현하기도 했고, 요즈음 연말에도 가장 자금사정이 안 좋은 곳은 기업이 아니라 은행들입니다. 반면 과거 매년 홍역을 치렀던 동자부는 올해 경제부처 중 유일하게 조용했던 부처로 남았습니다.

<개운 찮았던 케미컬 철수>
-사상파동 등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자금 사정은 힘들 때도 있었지만 올해는 전체로 보아 괜찮은 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채파동이후 금방 수많은 기업이 쓰러질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일신제강 하나만 넘어갔고 요즘의 어음부도율은 사상최저입니다. 그만큼 돈을 많이 풀었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나 올 상반기엔 비교적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 합리화 투자 등에 그 돈들이 쓰였지만 하반기엔 도리어 부동산등에 열을 올리고 은행주 매입전이 가열되는 등 바람직스럽지 못한 현상을 나타냈습니다.
-6·28 조치 때 4%나 내린 지금의 저금리는 우리 나라 금융사에 기록될만할 거예요. 정부에서는 지금도 매우 잘한 조치로 믿고 있으나 금융시장에서는 돈 빌어쓰는 기업들까지도 상당수가「너무 낮다」고 하니 문제입니다.
게다가 내년에는 이 금리를 더 낮추겠다니 두고 볼 일이예요
-82년의 문턱에서는 누구나 외채와 실업을 가장 걱정했었으나 지내놓고 보니 통화와 투기가 문제로 남았군요.
-어쨋든 내년엔 경기가 올해 보단 나아질 것이고 금융가의 경쟁은 치열해질 것이며 기업간의 우열은 더욱 벌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올해 실명제에 대해 걸었던 기대와 같은 지나치게 큰 기대는 걸지 않는 것이 우리 경제의 회복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 될 겁니다.
몇 년 쌓인 불황은 역시 몇 년 걸려 풀어가야 하는 것이 순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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