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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테러 막다 허리케인에 당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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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미리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5주간의 휴가 막판에 닥친 재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사고를 키웠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에 인적.물적 자원을 쏟아붓는 바람에 피해 예방이나 사후 복구작업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부실 대응 논란=미국 언론들은 부시와 현 행정부의 상황 인식.대응이 모두 잘못됐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뉴욕 타임스(NYT)는 '지도자를 기다리며'라는 1일자 사설에서 부시 대통령의 최근 대응을 통렬히 비판했다. 신문은 "대통령은 나서야 할 때보다 하루 늦게 나타나고도 '얼음과 담요.발전기 등이 재해 지역에 전달되고 있다'는 식목일에나 할 한가한 연설을 했다"고 꼬집었다.

행정부도 도마에 올랐다. NYT는 "지금은 수재 지역 구호가 최우선이지만 조만간 뉴올리언스의 제방이 왜 그렇게 부적절하게 방치돼 왔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며 부시 행정부를 간접 비난했다. 이재민 구호와 관련된 행정부의 비효율성도 문제가 됐다. CNN은 이날 뉴올리언스 경찰 간부의 말을 인용, "연방정부가 필요한 병력과 물.식량 등 구호물자를 피해 지역에 신속하게 보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서베이 USA가 8월 31일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9%가 "영방정부의 지원 활동이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고, 응답자의 50%는 "원조 활동이 너무 느리다"고 지적했다.

◆ "테러 막다 허리케인에 당해"=미국 내부에선 "이라크에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면 이번 참사에 훨씬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원성도 나오고 있다. 집중 피해를 본 미시시피.루이지애나주에서는 각각 3800명, 3000명의 주 방위군이 이라크에 파견돼 있다.

테러와의 전쟁 때문에 허리케인과 홍수 방지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는 비판도 부시 대통령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일 부시 행정부 및 공화당이 장악한 상.하원에서 2001년 이후 허리케인 관련 예산이 1억4700만 달러에서 8200만 달러로 거의 반토막이 됐다고 보도했다. 부시 행정부는 올해도 하원의 힘을 빌려 루이지애나주의 허리케인.홍수 방지를 위한 내년도 연방기금을 7100만 달러(7300억원) 삭감하려 했다.

물론 부시가 이번 위기를 제대로 넘기면 떨어진 인기를 만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라크전을 계속 수행해 나가야 하는 처지여서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급증하는 피해 규모도 부시에게 큰 부담이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서울=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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