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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볼의 미래' 쑥쑥 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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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아무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핸드볼은 올 여름 희망을 쏘아 올렸다.

남자 꿈나무들은 세계청소년(19세 이하)선수권대회 2위에 오른 데 이어 세계주니어(21세 이하)선수권대회에서 14년 만에 본선리그에 진출했다. 엄효원(19·원광대)은 청소년대회에서 59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올스타에 선정됐다.

여자도 세계주니어(20세 이하)선수권에서 3위에 올랐다. 모두 8월의 일이다. 39골을 터뜨린 정지해(20·삼척시청)는 올스타에 뽑혔다.

세계 여자 Jr선수권 올스타 정지해
전천후 선수로 펄펄

◆ 막내동생 같은 정지해

"핸드볼 안할 때요? 가무를 즐기죠. 하하하."

재기발랄, 깜찍하다. 3남매 중 막내인 정지해의 목소리에는 아직도 어린 티가 묻어난다. "또래 친구들처럼 마음껏 놀지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말하는 정지해. 솔직하다. 직설적 말투가 매력적이다. 그러나 정지해의 애교 섞인 표정과 말투는 코트에 들어서면 사라진다. 상대 수비 진용을 향해 온몸을 내던지고, 이를 악물고 사이드를 돌파해 슛을 한다.

지난해 실업무대에 데뷔한 정지해는 쟁쟁한 선배들에 가려 있었다. 레프트백 이설희가 무릎을 다쳤다. 그 위치에 들어가 제 몫을 다했다. 이설희가 복귀하자 설 자리가 없어졌다. 그때 센터백 김향기가 다쳤다. 삼척시청 이계청 감독은 정지해에게 센터백 임무를 맡겼다. 낯선 자리였지만 그 공백도 훌륭히 메웠다. 이번 세계대회에서는 처음으로 레프트윙으로 뛰었다. 그리고 올스타에 선정됐다. 말 그대로 올 라운드 플레이어다.

꿈이 뭐냐고 물었다. "오성옥(히로시마)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위기 상황에서 어쩌면 그렇게 침착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장기적으로는 해외 진출이다. "한국 핸드볼 특유의 기술을 전파하고 싶거든요."

세계 주니어선수권 득점왕 엄효원
반박자 빠른 슈팅 일품

◆ 맏형 같은 엄효원

"전국체전 때까지 꼭 재활해서 우승할 겁니다."

어른스럽다. 3형제 중 맏아들답다. 병원에 누워있으면서도 "핸드볼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한다. 8월 12일 카타르 청소년대회를 마친 엄효원은 15일 헝가리 주니어대회에 잇따라 출전했다. 피곤이 누적된 엄효원은 아이슬란드전에서 발목 골절상을 당했다. "너무 아쉬웠어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자기가 다친 것보다 팀이 진 것을 더 아쉬워했다.

엄효원의 유일한 취미는 인터넷 게임이다. "연습 끝나고 남는 시간에는 게임방에 자주 가요. 스타 크래프트나 리니지를 주로 하죠." 이제야 자기 나이에 맞는 말을 한다.

대학 새내기 엄효원은 2004~05 핸드볼 큰잔치 신인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1m82㎝, 76㎏로 센터백으로는 왜소한 체격이지만 머리 하나가 더 큰 유럽 선수들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다. 박영대(삼척대) 청소년대표 감독은 "반 박자 빠른 슈팅과 스피드가 일품"이라고 말한다.

포부는 진지하고 당당하다. "백원철 선배와 비교되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제2의 백원철'이 아니라 엄효원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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