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5. 불꽃을 따라서 <23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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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나는 먼저 규격대로 연필로 표시를 하고는 견본품을 만들어 톱날 옆의 작업대 위에 붙이고 그 규격에 맞추어 각목을 자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래도 일 솜씨도 서툴고 긴장이 되니까 집중을 해서 톱날을 끄고 켜기를 반복하지만 나중에는 그냥 톱날이 돌아가는 대로 놔두고 나무를 작업대에 올리고 빼기를 반복한다. 이를 노동의 소외라고 전문적으로 얘기하지만 어느 결에 마음은 이 지루한 작업장을 벗어나 지난 주말에 만났던 금순이 생각이라든가 구로극장에서 쇼를 보았던 일이며 지난 주에 고향에서 온 아우의 편지 등등 온갖 곳으로 분산되어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한눈을 팔며 저기 반장이 인상쓰고 들어오는구나, 여공 아무개가 요즈음 예뻐졌네, 어쩌구 하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각목을 쥔 손을 톱날에 밀착시킨다는 것이 제 손을 갖다댄다. 피가 튀면서 팔목 전체를 망치로 내려치는 듯한 충격과 함께 잘린 손가락이 바닥에 떨어져 신경 때문에 팔팔 뛴다. 선반이나 주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근호는 그래서 견습 시절에 손가락을 세 개나 잃었다.

일당은 일 주일에 한 번씩 시간 카드에 의해서 계산이 되었다. 출근할 때 수위실 앞에 비치된 타임 체크기에 각자의 출근 카드를 넣어 찍고 퇴근할 때 역시 찍어야 한다. 학규도 배치된 자기 작업대에서 열심히 일했다. 우리는 이 정도면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언제 이들과 친해지고 상급 숙련공들에게도 인간적으로 신뢰를 받아서 조직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될지 그건 그야말로 까마득한 일처럼 보였다.

손학규와 나는 작업조가 달라서 정상 근무를 하는 보통 때에는 함께 퇴근해서 저녁도 짓고 청소도 했지만 납품 날짜가 빠듯해지면 교대로 연장근무나 야근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서로 출퇴근 시간이 달라지고는 했다. 그런데 같이 살다 보면 식구끼리도 장단점이 드러나게 마련인 것처럼 학규가 언제부터인가 연탄불을 제대로 갈지 않아서 자주 꺼뜨리곤 했다. 밤 아홉 시가 되어서야 연근을 끝내고 돌아오거나 아니면 야근 뒤 아침 아홉 시에 집 구석이라고 들어오면 방바닥이 썰렁한 것이다. 아궁이를 열어 보면 연탄의 구멍마다 거멓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냥 포기하고 곯아떨어지면 그뿐이겠지만 그래도 뭔가 먹어야 하니까 하다 못해 라면이라도 끓이려면 연탄을 살려 놓아야 한다. 그때만 해도 번개탄 따위는 아예 없었다. 보통 서민 동네에서라면 이웃 집이나 건너편 셋집 아줌마에게 사정하고 불을 빌려다 쓸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이웃이란 없다. 모두가 같은 형편의 떠돌이인 셈이었다. 그래선지 부근의 구멍가게에서는 여러 개의 화덕을 길 밖으로 내놓고 불 붙은 연탄을 탄 한 개 값의 두어 배로 올려 팔았다. 겨울에는 값이 더 올라갔다고 기억하고 있다. 하여튼 투덜대며 불 붙은 연탄을 사다가 불을 살려내곤 했다. 그리고 나도 밤잠이 없는 부엉이 같기는 마찬가지인데 학규는 나보다 더해서 내일 새벽에 나가야 하는 날에도 늦게까지 무슨 빌어먹을 놈의 책을 읽는 것이었다. 일요일에 아침부터 일어나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려면 그는 잠자리에 엎드려서 독서 중이었다. 훗날 나는 그에게 자네는 어쩔 수 없는 먹물이라고 비아냥대곤 했다.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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