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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도 밝은 딸애친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국민학교 3학년인 우리집 딸 아이 친구중에 「옥자」라는 아이가 있다. 눈은 둥그러니 큰게 그래도 귀염성은 있어 보이지만 손이며 목덜미 등은 한번도 물이 안간 양 새까만 때가 함빡 묻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이 찌푸러지게할 정도였다. 게다가 바지는 항상 앞지퍼가 열려 있게 마련이고 옷은 때가 절을대로 전 옷이었다.
처음엔 좀 얌전히 있더니 낯이 익을수록 흙투성이 발로 양탄자를 밟고 다니며 수다를 떠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난감했다. 어떻게 보면 가정교육이 도무지 안된 버릇없은 선 머슴애 같기도 하여 가뜩이나 털털한 우리 딸 애가 더욱 더 덤벙대면 어쩔까하는 염려도 있어 같이 놀지말라고 할 수도 없고 참으로 곤란한 중에 있었다.
그런데, 어제 난 무심결에 오가는 말 중에서「옥자」라는 아이는 집은 무척 곤란하지만 마음만은 티없이 자란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 1남6녀중 네째지만 손을 다친 엄마를 위해 집안 궂은 일을 어린 아이로서 힘겹게 돕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주 조그마한 방에서 아홉식구가 같이 기거한다는 것도 알았다. 『참으로 잠자기도 불편하겠다』는 내말에『아니에요. 거꾸로 이리저리 자면 그래도 방은 좀 남아요』하면서 불평 한 마디 없이 활짝웃는 것이었다.
선머슴애 같으면 어떠랴. 이 아이에게는 값비싼 보석처럼 아름다운 심성이 있는 것을…. 양탄자가 좀 더러워지고 집안이 흙투성이가 되면 어떠랴. 모든 방들을 활짝 열어주어 우리집에서나마 마음것 뛰놀게 해주어야지, 하며 퇴근한 그이에게 「옥자」얘기를 했더니 『자주 옥자를 불러 대접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집 딸아이가 택한 친구의 심성, 그리고 그 착하고 순박함을 받아 들이게 된 우리 가족은 한사람의 귀여운 자녀라도 맞아 들이는듯한 즐거움을 맛보았다. <전남광주시중흥동 23용2반 322의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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