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임금 체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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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노총(위원장 이용득)이 직원들의 월급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한국노총 역사 59년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때문에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노동자의 체불임금을 청산토록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성명을 발표하던 한국노총이 올해는 추석이 17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조용하다. 한국노총은 31일 현재 본부 사무국 직원과 산하 연구원 등의 8월분 월급 1억여원을 지급하지 못했다. 지역상담원 32명은 월 100만여원인 월급을 7월부터 받지 못하고 있다. 체불임금이 1억6000여만원에 이른다.

한국노총 본부 사무국 인원은 70여명이지만, 이 중 한국노총이 채용해 월급을 주는 직원은 50여명이다. 나머지 20여명은 파견 인원으로 본인 소속 회사에서 임금을 받는다. 우리은행 직원인 이용득 위원장은 우리은행에서 월급을 받고 있다.

한국노총 직원들은 "추석보너스는 아예 기대도 안 한다"며 "노동자 돌보는 건 차치하고 조상도 못 모실 판"이라고 푸념하고 있다.

임금이 체불된 가장 큰 이유는 서울 여의도에 최근 신축한 한국노총 중앙복지센터에 예상 외의 추가 자금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한국노총은 설명했다. 복지센터 공사 계약을 할 때 공사비를 물가에 연동해 지급하기로 했는데, 공사 중 철근.콘크리트 등의 자재 가격이 크게 올라 공사비가 90억여원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등록세와 취득세 43억여원까지 한꺼번에 133억여원이 지출된 것이다. 한국노총은 매년 단위노조 등의 조합비 22억원을 받아 30억원을 지출하는 부실한 재정상태이며, 이 때문에 누적 부채가 240억원에 이르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거액을 지출하다 보니 임금을 지급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한국노총 관계자는 말했다. 또 지역상담원과 연구원 직원들의 월급이 체불된 것은 정부보조금이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국노총은 주장했다. 상담원은 정부 업무를 대신 하고 있으며, 연구원은 공적 기관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정부보조금으로 월급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올해 초 25억원의 보조금을 한국노총에 지원하기로 결정했지만, 지난해 지원금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이라는 등의 이유로 집행이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정길오 본부장은 "회계감사 등을 통해 재정상 문제점을 파악한 뒤 연말께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개혁안을 내놓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보조금을 계속 지급하지만, 내년부터 노총의 사업별로 타당성을 심사해 개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방만한 운영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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